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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파엘로,
그리스도의 변모,
패널에 유채,
405×276㎝,
1518∼1520년,
로마 바티칸미술관
이제 다시 산 밑으로 가자!
이 그림은 세부분으로 나뉜다. 맨 위는 산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눈부시게 변하신 장면이다. 예수님 양 옆에는
율법을 대표하는 모세와 예언자를 대표하며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엘리야가 나타난다. 율법과 예언의 완성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황홀한
변모다. 가운데는 제자들의 모습이다. 동행한 세 제자는 황홀경에서 깨어나기가 싫다. 화가는 목격자로서 왼 쪽 구석에 두 명을 더 그려
넣었다. 이들은 유스토 성인과 파스토르 성인인데, 당시 이 둘을 수호성인으로 모시고 있는 성당이 의뢰한 그림이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화가는 이
신비한 광경이 동시대의 사건임을 표시했다. 제자들은 꾀죄죄한 일상의 산 밑으로 내려가기 싫다. 여기서 영원히 머물고 싶다. 그래서 초막 셋을
짓자고 한다. 그러나 주님의 최종 목적지는 시끄럽고 죄가 더덕더덕 붙은 그 ‘세상’이었다. 하나님이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보내신 곳은 산 위의
황홀한 곳이 아니라 바로 그 ‘세상’인 것이다. 그리스도와 제자들은 다시 세상으로 내려온다. 기독교는 산 밑으로 내려가는 종교다, 산 밑에
매몰당하지 않으면서, 세상과 함께 호흡하면서 그 세상을 구원하기! - 아, 무지하게 어렵다. 어려운 길이지만 주님의 방향은 분명했고 기독교
역사의 방향도 그렇게 되어야 마땅하다! 세 번째 부분은 산 밑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리스도 없는 산 밑에는 난리가 났다. 중병에 걸린
어린아이를 고쳐 달라고 아버지가 데려왔지만 제자들은 고치지 못했다. 제자들도 치유를 시도했었나보다. 그러나 결과는 고칠 수 없었다. 오른편에는
아이와 가족 등 치유를 의뢰하는 이들이 있다. 오른쪽 초록색 옷 입은 이가 아버지이고, 상의를 벗은 소년이 귀신들린 아이다. 아이의 몸은 뒤틀려
있고 눈도 허옇게 돌아가 있다. 아버지의 큰 눈이 인상적이고, 손을 모으고 팔을 들어 벌리면서 간청한다. 그리고 아이 앞의 두 여인은 이 아이를
좀 보라고, 좀 보고 제발 고쳐달라고 애원하고 있다. 이 지난한 삶을 기독교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왼편에는 9명의 제자들이
대칭하고 있다. 뒤편에서 그저 바라만 보는 이들, 치유를 시도해보나 능력이 안 되어 어찌하지 못하는 이들, 손가락으로 산 위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들, 왼손을 펴고 오른 다리를 내밀어 화면 밖의 사람들을 초청하는 제자 - 한 손에는 성경을 들고 눈은 아이를 쳐다보며 손과
발로는 우리에게 책임을 져야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는 듯하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사람들이 떠났을 때 제자들은 조용히 주님께 여쭈었다.
“주님 우리는 왜 못 고쳤을까요?” 주님의 대답은 명료했다 : “기도만이 능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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