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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가정 2014년 11월호 한페이지 미술관
말씀과 행함의 합류
이훈삼목사 (주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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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베르메르,
마르다와 마리아 집에 간 예수,
160*142cm, 1655년,
스코틀랜드 국립미술관
그림 출처 :
세기를 빛낸 위대한 화가들,
팀 말로 외 공저 ,
이보경 옮김,
2003년,
예담출판사
제자요 든든한 후원자였던 마르다와
마리아의 집을 주님이 찾아오셨다.
나사로,
마르다,
마리아 남매는 주님과 가족 같은 친밀함을 드러내고
있다.
누군가의 집을 방문하고 영접하는 것은 그만큼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너무도 기쁘고 감사한 주님의 방문에 두 자매는
최선을 다해 주님을 맞이한다.
마르다는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하다.
사랑하는 주님께 최고의 대접을 해드리고 싶었을
것이다.
반면 마리아는 주님 발치에 앉아서 손에 턱을 괴고는
말씀에 골똘히 집중하고 있다.
혼자 분주하던 마르다는 마리아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돕게 하라고 주님께 말씀드리지만 돌아온 대답은 뜻밖의 것이었다 ;
마리아는 좋은 것을 택하였다.
기독교 전통에서 몸으로 실천을 대표하는
마르다와 말씀을 깊이 숙고하는 정숙주의를 대표하는 마리아는 신앙을 완성시키는 한 쌍의 수레바퀴다.
말씀과 실천은 모두가 소중하다.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추구하는
과정과 몸으로 직접 뛰어 들어 실천하는 것이 더 긴급한 상황이 있다.
어느 것이 더 적절한 것이냐는 상황이
결정한다.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일률적으로 말하는 순간
이미 우리는 교조주의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성경에 기록된 예수님의 지금 상황에서는
식사보다 진리를 가르치는 일이 더 긴급하고 중요하였다.
주님의 십자가 처형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예수님이 오늘 이 가정을 방문한 것은 대접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리를 설파하는 것이 더 궁극적인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북구의 모나리자라고 불리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년)’를 그린 네덜란드의 얀 베르메르(1632~1675년)는 살아있는 동안에는 거의 무명이었고,
남긴 작품 수도 35점에 불과한 신비의 화가다.
베르메르는 전체적으로 따뜻한 색채를 통해 이 자리가
무엇이 옳으냐는 논쟁의 자리가 아니라 신뢰와 협력의 자리임을 넌지시 비치고 있다.
화면의 세 사람은 삼각형 구도를
이루며,
마리아와 마르다는 그리스도의 자리에서 하나로
수렴된다.
주님의 손은 마리아를 가리키고 반면에 주님의 눈은
마르다를 향하고 있다.
덕스러운 실천을 강조하는 구교와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신교의 치열한 대립을 경험한 화가는 말씀을 숙고하는 것과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것이 서로 양립하지 않고 모두가 필요한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믿음 없이 행함에 경도되는 신앙인은
행동지상주의에 빠지기 쉽다.
반면 행함 없이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고백에
머무는 신앙은 실천 없는 관념주의로 추락할 위험을 지니고 있다.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과 실천의 통일은 모두 우리가
예민하게 성찰해야 할 신앙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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