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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를 잃어버린 시대에 고인 눈물'티치아노,(새가정 2015년 2월호) 주민교회 (juminch)
2016년 11월 21일 22시 32분 50초 575
“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 (누가 7:37~38)
 
 
 



 티치아노,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118*97cm, 1565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레미타주미술관


 출처 : 고종희, 명화로 읽는 성서, 2000년, 한길아트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인간의 첫 번째 자세는 감사다.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때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라는 고백이 기독교 신앙의 정수다.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주신 십자가의 은혜는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용서하신 지고한 사랑이며 부활을 통해 확인해주신 승리의 감격이다. 그 모든 기독교 신앙의 전제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고백이다. 현대 기독교의 진정한 위기는 인간의 죄성에 대한 고백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무기력한 대응에 놓여있다. 특히 기독교 복음의 사회성을 회복하기 위하여 도입한 역사-사회적 신앙은 복음의 개인화를 넘어 사회-구조적 시각을 획득했다는 소중한 성과와 함께 기독교 신앙의 전제인 죄책 고백을 약화시키거나 도덕적 수준으로 하향시켰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인간의 죄의식이 축소된 채로 추구하는 기독교 신앙의 자기 정체성 확립은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성경에는 여러 명의 마리아가 등장하여 혼동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서구 기독교 전승에서는 간음하다 현장에서 체포된 여인과 참회하면서 향유를 부어 주의 장례를 예비한 죄 많은 여인이 동일 인물인 막달라 마리아에게로 수렴되어 보다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되었다. 사회 전체가 성스러움을 추구하던 시대에, 거룩한 성경에 등장하는 여인이 한 때 쾌락을 탐닉하던 아리따운 여인이었는데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주님의 십자가 처형장을 지키고 무덤까지 찾아가 부활의 첫 증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는 것은 지금 들어도 감동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16세기 르네상스 시대, 형태를 중요시 하던 미켈란젤로 중심의 피렌체-로마 화파가 있었다면 그와는 달리 색채와 빛을 회화의 중요한 요소로 여긴 티치아노(1490~1576년) 중심의 베네치아 화파가 존재했다. 티치아노는 이후 색채와 빛을 중시하던 화가의 교과서가 되었다.


 


 


 



 티치아노,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85*68cm, 1533년,  피렌체 피티미술관


 

그는 40대 초반에 참회하는 마리아를 그렸다. 티치아노의 작품들을 보면 인간의 살(肉)을 어떻게 저렇게 표현할 수 있는지 놀랍다. 긴 금발머리로 온 몸을 휘감은 젊은 여인이 하늘을 우러르고 있다. 그의 풍만한 가슴과 크고 맑은 눈은 그 시대 남심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의 부속물(Attribute/애트리뷰트)인 향유 병이 옆에 놓여있지 않다면 마리아인줄 잘 몰랐을 것 같다. 게다가 제목이 ‘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라니! 제목과 달리 마리아는 너무 관능적이다. 화가는 성경을 빌려 그만의 에로티시즘을 표현하고 있다.

약 30년 후 70대 중반의 티치아노는 같은 제목의 그림을 다시 그렸다. 구도, 색상, 모델 등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러나 화려한 아름다움의 첫 번째 작품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긴 머리카락은 갈색으로 바뀌었고, 향유 병은 어둠 속에 잠겨 있으며, 그 녀 앞에는 성경이 놓여 있고 그 아래에는 해골이 받치고 있다. 그리고 어둔 하늘을 바라보는 마리아의 충혈 된 두 눈에는 눈물이 한 움큼씩 들어 있다. 그토록 아름다운 육체, 젊음, 사랑, 명성도 언젠가는 모두 한 줌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어버릴 것이다. 그림은 어두워졌지만 그만큼의 깊이가 생겨났다.

생전 티치아노처럼 부귀와 영화를 누린 화가가 흔하지 않다. 모델을 서던 황제 카를 5세가 티치아노가 떨어트린 붓을 줍기 위하여 몸을 숙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정도로 당당했던 화가가 노년에 이르러 깨달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실 진정으로 변한 것은 마리아의 모습이 아니다. 그녀를 통해 인생을 바라보는 노구(老軀)의 화가 자신일 것이라!


이훈삼 목사 <성남주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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