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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니스와후 링케, 비명지르는 돌(1946년),수채화, 85×44cm, 폴란드바르샤바국립미술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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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17년 02월 12일 10시 03분 14초



부르니스와후 링케, 비명지르는 돌(1946년), 수채화, 85×44cm, 폴란드바르샤바국립미술관


폴란드 화가로서 나치에 의한 유대인의 억압과 학대를 경험한 작가는 납득할 수 없는 현실의 고통을 그림으로 호소하는 것 같다. 모든 것이 무너져 폐허로 변한 도시 건물 잔해 위에 박혀 서 있는 사람 또한 시멘트 기둥 같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고, 머리에서부터 쓰고 있는 유대인 표식의 망토도 군데군데 구멍이 나있다. 그는 희망 없는 고통의 현장에서 암담한 현실에 망토를 뒤집어 쓴 채 고개를 숙이고 흐느낀다. 실제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양손은 노동으로 거칠고, 얼굴을 움켜 쥔 채 괴로워한다. 왼손 팔뚝에 감겨있는 전깃줄 같은 것은 살 속으로 파고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른손 팔뚝 안쪽은 이 현실에 긴장하고 격분하여 굵은 힘줄이 유난하게 두드러진다. 그는 이 쓰라린 고통의 현장을 벗어날 수 있을까? 쉽게 그럴 수 없을 것 같다는 절망이 묻어난다. 묵묵히 역사의 불의와 고통을 받아내면서 언제까지 견뎌야 할까? 정착할 수 없는 유랑인들의 고통이다. 그 속에서 만난 야훼는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키는 자유와 평등의 신이었다. 21세기, 오늘도 야훼 하나님은 동일하신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음 소리에 구원으로 응답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