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종말에 이르러 나타날 구원과 심판의 현상은 여러 가지로 설명되어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결혼 잔치의 비유다. 성경에서 결혼은 아주 중요한 삶의 요소다. 결혼은 인류가 존속하는 방법이요 모두가 축하하고 기뻐하는 잔치다. 결혼식 날만큼은 신랑과 신부가 세상의 주인공이다. 결혼식에는 기쁨과 감사와 희망이 넘치고 또 하나 먹을 것이 넘친다. 늘 가난하게 사는 이들에게 결혼식은 기다려지는 축제고, 날마다 사는 날이 결혼식 같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는 어떤 모습인지 설명할 때 결혼식을 그 비유로 들게 되었다. 예수님이 메시아로서 일으킨 첫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일이었다.
마태 25:1~3도 종말에 대한 유명한 예수님의 비유다. 지금은 선과 악이 섞여 있지만 종말의 때가 오면 선과 악이 확연하게 구별되어 서로 전혀 만날 수 없는 간극을 지니게 될 것이다. 오늘 열 처녀의 비유도 평상시에는 열 명이 비슷하지만 인생과 역사의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는 두 그룹으로 명백하게 구분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이들은 원래부터 나뉜 것이 아니었다. 모두 비슷했었다. 모두 다 신랑이 오시길 기다렸고, 모두 혼인잔치 자리에 들어가 행복을 누리기 원했고, 그를 위해 어느 정도 준비도 했다. 그러나 어리석은 다섯 처녀로 불리는 이들은 그들의 바람과는 달리 혼인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고 실패자가 되었다. 신랑이 올 때까지 불을 밝힐 수 있는 기름을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느 정도는 기름이 있었지만 충분하지 않아서 정작 신랑이 온다할 때는 불이 꺼져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본인들이 원했고 또 준비도 어느 정도 했음에도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슬픔과 탄식에 빠졌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착하고 믿음 있는 사람들이라면 동료들이 기름이 부족할 때 자신의 것을 나누어서 모두 함께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어야지 몰인정하게 나누지 않고 자기만 천국에 들어가려는 지혜로운 다섯 처녀도 천국에 합당한 사람은 아니라는 등, 나는 저런 인간들이 가는 천국은 사양하겠다는 등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라. 모든 비유는 하나의 초점을 지니고 있다. 이 비유의 초점은 종말의 때가 언제일지 모르니 기름을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는 그 한 가지에 비유의 초점이 모아져 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한데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랑이 낮을 지나서 한밤중에 오셨다. 이 그림의 특이점은 두 그룹의 구분을 좌우나 원 안팎으로 하지 않고 문안과 밖에 이어서 1층과 2층의 공간으로 나눴다는 점이다. 조금 전까지 여기 등장하는 열 명의 처녀들은 처지가 비슷했다. 모두가 잔치의 영광을 원하고 모두가 거기 들어가고 싶어 하며 어느 정도는 각 자 준비하여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같은 운명이었다. 그런데 정작 신랑이 도착하자 이들의 운명이 둘로 쫙 갈라졌다. 저기 저 문 안팎과 1‧2층은 눈으로 보는 정도의 간극을 넘어 도저히 건널 수 없는 차이다.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천국과 지옥이 전혀 섞일 수 없는 것처럼…! 문 안으로 들어가 2층에 신랑과 함께 있는 다섯 명은 영원한 평안과 축제의 안쪽에 서 있다. 더 이상 불안과 울부짖음이 없다. 그저 애처롭게 이곳에 들어오지 못한 이들을 창밖으로 건네다 볼 뿐이다.
이야기의 초점은 어리석은 다섯 처녀다. 각기 다른 자세임에도 분위기는 같다. 슬픔과 후회와 간절함이다. 문을 두드리며 열어달라고 호소해보지만 열릴 것 같지가 않다. 한번 닫힌 문은 도대체 틈이 없다. 누구도 열 수 없는 문이다. 무릎을 꿇고 애원해도, 손을 높이 들어 기름을 채워달라고 해도, 아예 빈손으로 고개를 들어 눈빛으로 간절히 호소해 봐도 한번 닫힌 문을 열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우리에게 기회는 늘 가능성으로 열려있지만 한번 지나가버린 다음에는 섬뜩하리만큼 차갑다, 우리들 죽음처럼!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는 절기다. 실제 역사에 탄생하신 주님의 탄생일을 기념하는 것은 그분이 2천 년 전에 오셨듯이 지금 우리들 속에 그렇게 다시 탄생하시기를 염원하는 것이다. 이 기다림에 결실 있으면 좋겠다. 문 안 2층의 안락함에서 신랑과 함께 영원한 생명의 잔치에 참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럼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