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주 하나님께서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지으시고는 창조세계 전체의 관리 책임을 인간에게 맡기셨다. 이로써 인간은 피조물이되 단순한 역할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세계를 위임 받은 사명자가 된 것이다. 단 하나님은 인간에게 권한을 주시면서 한계를 지어주셨다. 에덴동산의 모든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되 선악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가 바로 특별한 피조물이지만 창조주 하나님과는 같아질 수 없는 인간의 근본적 한계다. 인간의 한계를 지어주신 창조주와 그 한계를 넘어가보려는 인간의 대립과 갈등, 역사는 또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인간이 이 한계를 넘어서 신이 되고자 선악과를 따먹었다. 그것이 사탄의 유혹이든 본인의 결정이든 죄를 짓고 난 다음에 보여준 아담과 하와의 행동도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았다. 그리고는 하나님 몰래 숨으면 찾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하고 숨었다. 이것 또한 죄다.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죄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은 아담과 하와가 수풀 속에 숨어 있다. 아담은 손을 모아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으며 자신 때문에 아담이 유혹에 넘어갔다고 자책하는 하와는 옆에서 어찌할 줄 모르고 긴 머리카락만 매만지고 있다.
하나님의 눈길을 벗어나 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어리석음 옆에는 악이 도사리고 있다. 뱀으로 표현된 악의 화신은 죄를 짓고 하나님께로 나아가 정직하게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인간 옆에 자리 잡고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피하려는 곳에 죄가 도사리고 있다.
인간을 사이에 두고 창조주 하나님과 이들을 창조주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하는 악마가 대립하고 있다. 역사는 선과 악 이 두 존재 사이의 줄다리기이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멸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재창조하실 것이라는 것이 큰 틀에서 기독교 역사관이다.
그토록 사랑한 인간으로부터 배신당한 창조주 하나님은 그저 이 상황을 지켜볼 뿐이다. 어떤 심정이셨을까? 이 해명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 하나님은 오히려 인간을 측은하게 여기시는 것 같다. 거짓에 대해 분노보다 앞서는 측은함이다. 기독교의 구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