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 3:1~5, 12)
때는 바야흐로 칠흑 같은 밤이다. 창밖으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로지 방안의 등불만이 유리창에 비칠 뿐이다. 밤이 아니면 사람들의 시선에 들킬 수 있고 그것은 참으로 위험한 행위다. 밤에 온다 해서 니고데모의 불안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당대의 권력자들이 불온시 하는 예수를 만나러 가는 것 자체가 불안한 일이다. 독재 시대에는 민주화 운동가를 만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었다. 그것 때문에 체포될 수도 있고, 고문 받을 수도 있고, 가정과 일터가 하루아침에 붕괴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니고데모는 캄캄한 밤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 또한 늘 탐구하고 고민하던 분이었다. 물론 이 그림에서처럼 책을 본 것은 아닐 것이다. 당시는 저런 제본된 책도 없었다. 그러나 하늘과 바람과 별을 보면서 그 속에서 숨쉬고 사랑하고 싸우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되 뇌이면서 구원을 탐구했을 것이다.
니고데모를 만난 예수님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 중의 한 사람인 니고데모에게 인간과 역사의 근본에 대해 설명하신다. 하늘의 일이란 그런 뜻이었을 것 같다. 저 하늘 위에서 발생한 일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 피상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인생과 역사의 뿌리에 대한 이야기를 손을 들어서까지 열심히 설명하신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위대한 이 말씀은 바로 니고데모에게 하신 말씀으로 기록되었다. 우리는 니고데모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 전해 듣게 된다.
이 장면에서 중요한 것은 니고데모다. 그리스도와 달리 우리가 동일화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세와 표정이 부럽다. 그는 예수님보다 인생을 더 많이 살았고 학벌도 훨씬 좋고 가문이나 현재의 위치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인물이다. 그럼에도 그는 마치 초등학교 어린아이가 선생님께 집중하듯이 예수님에게 시선을 강탈당하고 있다. 그리스도에게 저당 잡힌 시선, 삶이 행복하다. 나는 저만큼 집중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