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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2. 암스테르담 렘브란트의 집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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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0년 03월 21일 16시 58분 46초





<2020.3.22. 주보 그림>

암스테르담 렘브란트의 집

기독교 미술이 만개한 르네상스 이후 대부분의 화가들은 가톨릭교회의 의뢰와 후원을 받아 작품을 만들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르네상스가 융성하던 시기에도 때마침 일어난 종교개혁의 영향이 여러 화가들의 작품에 녹아들어있다고는 해도 그렇다. 르네상스와 매너리즘을 거쳐 17세기 바로크 미술 쯤 되어서야 개신교 입장을 반영하는 미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네덜란드의 렘브란트(Rembrandt/1606~1669년)이다.

우리에게는 플란더스의 개로 더 유명한 플랑드르 지방은 16세기 당시 강대국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로마 가톨릭의 강력한 수호자였던 스페인 제국이 플랑드르 지역에 가톨릭 신앙을 강요하자 북부지역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적극 저항하여 개신교 국가인 지금의 네덜란드가 되었고, 남부지역은 그대로 가톨릭 국가로 남아 벨기에가 되었다. 그렇게 선조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피로 얼룩진 역사를 지닌 네덜란드지만 지금 기독교 인구는 개신교(16%)와 가톨릭(24%) 합하여 40% 정도고, 무종교인이 50%를 넘는다. 우리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은 세계적인 관광지인데 그 중 렘브란트의 집이 있다.

그가 살았던 집은 거의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의 생활공간과 작업실을 직접 느낄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렘브란트의 후예들은 선조의 유산을 잘 보관하고 관리하는 것 뿐 아니라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는 점이다. 렘브란트의 집은 ‘렘브란트 실험실(Laboratorium Rembrandt)’이라고 현수막을 걸어놓았다.

기념관 한 층에는 그가 어떻게 작품을 만들었는지, 구도와 색상 그리고 재료는 어떻게 썼고 어떤 화풍으로 그렸는지를 현대 과학을 통해 연구하고 입증하고 있었다. 연세 지긋하신 노인이 유심히 관찰하는 모습과 기념관 안팎에서 청소년들이 함께 기념관을 찾아와 선조들의 땀과 노력의 흔적들을 직접 느끼려 하는 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재는 과거 위에 놓여 있으며 우리들의 미래는 현재의 연장선상이다. 스쳐지나가는 인생과 역사의 순간을 붙잡아 놓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분석하여 대안을 내놓는 사람‧집단‧교회가 이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