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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6. 꽃을 따는 처녀, 1세기, 프레스코, 나폴리 국립고고미술관(그림출처:임두빈, 서양미술사이야기, 2003년, 가람기획)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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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0년 08월 15일 21시 59분 01초

<2020.8.16. 주보 그림>

꽃을 따는 처녀, 1세기, 프레스코, 나폴리 국립고고미술관
그림 출처 : 임두빈, 서양미술사이야기, 2003년, 가람기획

서기 79년 8월 24일 로마 남쪽의 휴양지 폼페이 시 근처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짙은 화산재는 당시 인구 2만 명 이상이 거주하던 폼페이시를 그대로 뒤덮어버렸고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 2천 여 명이 재를 뒤집어 쓴 채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예상치 못한 재난을 당한 인간의 모습을 너무도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는 폼페이는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경각심과 안타까움을 동시에 주고 있다. 그 후 도시 전체를 뒤덮어 굳어버린 5m 이상의 화산재 때문에 폼페이는 역사로부터 잊혔다가 18세기가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다시 발굴되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 반 정도 복원된 상태다. 화산재 덕분(?)에 폼페이는 당시의 생활상과 예술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데, 그 중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이 ‘꽃을 따는 처녀’이다.

젊은 여인이 맨발로 춤추듯이 살짝 풀밭 위를 걷고 있다. 왼손에는 꽃병을 안고 오른 손으로는 꽃을 따고 있다. 여인은 전체적으로 균형이 잘 잡힌 몸매다. 나풀거리는 옷은 왼쪽 어깨에 걸쳐있고 오른 쪽 어깨끈은 팔까지 내려와서 어깨선이 다 드러나 있다. 어깨로부터 목덜미를 지나 뒤로 묶은 머리를 넘어서 꽃을 바라보는 여인의 오른쪽 얼굴에 이르면 모호한 아름다움과 마주친다. 이 여인이 누군지, 왜 꽃을 따고 있는 것인지… 우리는 이 여인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 단지 뒷모습만 볼 뿐이다. 어느 집 벽에다가 프레스코(Fresco/새로 석회를 바른 벽이 채 마르기 전에 수채화를 그리는 화법)를 그린 화가는 왜 여인의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을 담았을까? 마음 같아서는 벽화 속으로 뛰어 들어가 여인 앞을 가로질러 가서는 내 고개를 확 돌려 그 앞 얼굴을 확실하게 보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 여인이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뒷모습만으로 표현된 아름다움 때문이 아닐까? 보는 이는 조금 답답하지만, 인간이 잘 알지 못하는 공간이야말로 ‘앎으로부터 오는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신비적 아름다움’이 기거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모더니스트(Modernist)다. 근대 이전까지 숲속에는 요정이 살았고, 산과 강에도 인간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신비가 있었다. 그래서 자연은 인간의 욕망을 위해 마구 파헤칠 수 없는 두려운 존재였다. 근대는 신비의 영역을 인간 이성으로 거침없이 들춰냈고, 현재 세계 전체를 규정하고 있는 근대화란 바로 과학화의 놀라운 확장이다. 과학화는 곧 비신화화(非神話化)였다. 인간은 더 이상 잘 모르는 영역을 방치하지 않는다. 어떡하든지 그 신비를 벗겨내고 파악(把握)하고자 한다. 이제 인간 이성이 비추는 구석구석마다 신비는 사라지고, 하나님의 거처도 점점 좁아지고 있다. 과학적 현대인은 끈질기게 하나님께 요구한다 ;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명확하게 당신의 존재를 드러내 보이시라, 인간 이성이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모습으로 실험대 위에 올라오시라… 그러면 우리가 신을 믿겠다고! 근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똑똑해진 인간, 그 인간이 만들고 있는 현대 세계는 더 행복해지고 있는 걸까? 과학기술의 풍요와 편리는 인간의 품성과 가치를 더 높이고 있는가? ‘이성’이라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우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며 어떻게 조절할 수 있을까?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 당신의 뒷모습을 살짝 드러내 보여주셨다. 다 드러내 보여주지 않는 신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겸손한 이성이야말로 현대 우리가 안고 있는 거대한 문제들과 실존적 고민들을 해결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