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모 만추(Giacomo Manzu), 그리스도의 죽음(바티칸 죽음의 문 일부), 1964년 코로나 이전 로마 바티칸은 늘 관광객들로 붐볐다. 서양 역사와 정신의 핵을 직접 보고 느끼고 싶은 세계인들의 바람이 물결치는 곳이다. 사람들에 떠밀려 관람하다보면 다리도 아프고 피곤해지는데 마지막 시스티나 성당 제단과 천정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과 천지창조를 보는 순간 그림에 압도된 탄성이 모든 피로를 씻어버린다. 그리고는 아쉬움으로 나서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바티칸은 출구 문까지도 고이 보내지 않고 붙잡는다, ‘죽음의 문(The Door of Death)’이다. 만추(1908~1991년)는 단순한 칼질 몇 번으로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대가(Maestro)는 그런가 보다. 죽임당한 그리스도의 몸이 허공에서 늘어졌다.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던 발과 휘두르던 팔은 맥이 없다. 어디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던 눈빛은 감겨버리고 고개는 땅으로 숙였다. 자기 몸 하나 지탱하지 못하는 그리스도는 구원의 주가 아니라 무거운 짐이었다. 십자가 아래서 조심스럽게 시신을 내리는 인부는 밧줄에 온 힘을 모으고 있다. 작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을 현대에 맞게 교수형으로 처리하여 시간의 간격을 좁혔다. 사랑하는 주님의 몸이 한 순간 차갑게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제자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애도하는 것뿐이다. 막달라 마리아가 슬픔을 참지 못하고 팔로 얼굴을 가리며 운다. 그녀의 흐느끼는 호흡이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도대체 어디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만신창이가 된 오늘의 교회가 회복되기 위해서 돌아가야 할 곳은 어디인가. 모든 것은 본질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빠르고 효과적이다. 오늘의 교회는 기독교의 출발지점인 주님의 죽음과 부활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거기가 복음의 발원지요 회복의 장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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