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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07. 휘호 판 데르 후스(1440~1482년), 타락,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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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03월 07일 16시 42분 01초

<2021.3.7. 주보 그림>
휘호 판 데르 후스(1440~1482년), 타락,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박물관
15세기 플랑드르(지금의 네덜란드, 벨기에, 덴마크) 지방의 화가 후스가 인간의 타락을 그렸다. 원래는 책을 펼쳐놓은 것 같은 작은 크기의 액자 두 개를 붙여서 다른 한쪽에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애도하는 장면을 이어놓았다. 이로써 화가는 죄와 구원이라는 기독교 복음의 핵심을 표현했다.
에덴동산의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나무의 열매만은 따먹지 말라고 엄명하셨다. 나름대로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던 아담과 하와가 어느 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었다. 이것이 죄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어기는 것이 바로 기독교가 말하는 죄다. 이것을 굳이 원죄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 거역하고자하는 성향이 첫 사람 아담과 하와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들이 대표하는 후대 모든 인간의 본성 속에 담겨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기도 아름다고 먹음직스럽기도 한 선악과를 따먹고 싶어 하는 욕망이 모든 인간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다. 그것은 인생과 역사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부정하려는 욕구,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 스스로가 자기 삶의 주인이라는 주장, 그래서 마침내 인생과 역사는 하나님 없이 인간이 책임지고 스스로 만들어 낙원(에덴동산)을 유지해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기독교는 바로 이런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을 죄라고 부른다. 그리고 죄의 결과는 죽음이다. 이 죽음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옮겨 놓을 수 있는 권능을 인간은 가지고 있지 못하며 오직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만이 가능하시다는 결론에 오래 전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렀다는 점이 위대하다.
죄로 죽음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매달아 죽게 함으로써 인간이 죄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덕분이다. 이것이 은혜다. 이것이 기독교가 말하는 복음-구원의 소식이다.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이 뭐 그렇게까지 죄인이냐고 반문하고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는 증명할 수는 없어도 성경을 통해서 계시된 이 내용이 맞다고 받아들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죄 때문에 영원한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라고 자기를 이해한 사람들이다. 이 놀라운 구원을 이룬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고 우리의 모임을 기독교 교회라고 부른다. 
구원이 필요하려면 인간이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 전제다. 죄인이라는 전제가 없으면 굳이 구세주가 필요하지 않다. 우리 삶에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조건이 아닌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 뿐 아니라 세계교회 위기의 뿌리는 여기에 닿아있다. 물론 교회가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도덕적 우위를 갖지 못한 것이 표면적인 이유이기는 하나, 교회가 무너지는 진짜 근본이유는 우리는 죄인이라는 고백이 사라지고 있는 현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