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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04. 구스타프 도레, 기독교의 승리(부분), 1868년, 캐나다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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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07월 04일 10시 58분 43초

<2021.7.4. 주보 그림>

구스타프 도레, 기독교의 승리(부분), 1868년, 캐나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새로운 삶과 역사의 길을 열어주셨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불의가 만연하고 악인이 큰소리치며 착하고 신실한 사람들이 고난 받는 현상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런 인생과 역사의 모순을 정리하고 완성하는 때, 그 날이 바로 주님이 다시 이 땅에 임재하시는 날이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지닌 기독교 믿음의 핵심은 주의 재림을 통해 인생과 역사의 불의를 심판하고 모순을 극복하면서 창조의 모습을 온전히 회복하는 거대한 프로젝트였다.

주님의 재림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은 그러므로 지금 풍요롭고 권세를 부리고 평안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불의한 구조 속에 내던져진 아픈 인생들이었다. 그래서 주님이 오시는 재림의 복음은 가난한 자, 갇힌 자, 눌린 자, 억울한 자, 아픈 자, 상처 받은 자, 죽임당한 자들의 복음이었다. 이런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고 믿고 싶어 하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었기에 복음은 누구에게나 열려있지만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하셨다.

200년 전까지만 해도 초대교회의 예수 재림 신앙을 유지하기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아직 과학기술이 신의 영역까지 침범하지는 않았고, 인간 내면에 신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감이 여전히 많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세기를 지나면서 인류의 생각은 너무나 큰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다. 즉, 인류 역사에 종말은 없다는 사고방식이 전 세계에 확산된 것이다.

19세기 사상 중 두 가지가 현대까지 가장 유력한 상식이 되었다. 하나는 진화론이다. 우주 모든 생명체는 처음에 아주 간단한 단세포에서 시작하여 끝없는 변화와 환경 적응을 통해 무한히 발전해왔다는 생각이다. 생명은 무한히 변화하고 발전한다. 이것은 이미 초등학교에서부터 가르치는 현대 사회의 상식이다. 또 하나는 지속적인 발전사관인 헤겔의 역사 변증법과 마르크스의 낙관주의적 발전사관의 일반화다. 진화론과 사회주의적 발전사관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 되면서 주님의 재림에 의한 역사의 종말과 완성이라는 기독교 복음은 소리가 매우 작아지고 우리 시대가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기성 기독교의 복음은 초대교회가 지녔던 강력한 종말론적 메시지가 약화되고 도덕 강론 또는 사회 비판 수준으로 격하되었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초대교회의 강력한 종말론적 구원을 폐기한 것은 아니다. 이 틈을 노리고 득세하는 세력이 종말론 바탕의 이단 사이비집단이다. 지금이라도 기성 교회가 초대교회가 선포했던 인생과 역사의 종언에 관한 절대적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회복하지 않는다면 하나님 없이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과학주의와 사회발전 사상에 기독교 진리의 입지는 좁아질 것이고 사이비 종말론을 주장하는 이단 종파를 효과적으로 막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이 약속하셨고 초대교회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했던 복음을 수호해야 한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달해도 인생과 역사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며, 하나님 없이 건설하려는 인간의 어떤 시도도 외양은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침내 결과는 바벨탑의 붕괴 운명을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의 자기 능력에 도취되어 하나님을 폐기하고 죄의 길을 걸어가는 현대를 향해 교회는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각오를 하고 외쳐야 한다 ; 새로운 인생과 새로운 역사는 주님의 다시 오심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이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투쟁이다. 지금 교회가 이 전투에 나서야 한다.

우리에게 그럴 용기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