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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주보 그림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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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1년 10월 24일 01시 01분 27초

<2021.10.24. 주보 그림>

율법을 구원의 길로 믿는 유대인들에게 계명은 곧 생명이었다. 율법 전문가인 서기관이 예수님께 물었다. 십계명을 비롯해서 유대사회에는 아주 소소한 것까지 지켜야할 계명이 많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신앙의 본질이 무엇이냐는 물음이다. 사실 이런 질문이 어렵다, 인생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하기 참 난감하듯이! 

단순하지만 어려운 질문에 대한 주님의 대답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기독교 진리 실천의 온전한 기준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익숙한 이 명제가 2천 년 전 유대 사회에서는 낯설고 신선했을 것이다. 하나님 사랑이야 더 말할 필요 없이 당연한 것인데 예수님은 이어서 이웃 사랑을 말씀하시면서 오히려 방점을 이웃 사랑에 찍은 것 같은 느낌이다. 물론 첫째는 하나님 사랑 그리고 둘째를 이웃 사랑이라고 하셨지만 사람들의 귀는 익숙한 하나님 사랑보다는 신선한 이웃 사랑에 더 기울이게 된다. 서양 중세 천년 보다 더 오래 전이고 더 신 중심의 공기가 지배적인 유대 사회에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함께 강조한 것 자체가 파격이었을 것이다. 주님은 이렇게 함으로써 사랑이 하늘로만 향해서는 안 되고 그 사랑이 구체적인 인간인 이웃에게로 같이 실현되어야 한다고 선언하셨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언급하셨듯이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도 그냥 지나간 제사장이나 레위인의 신앙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향해 있었다. 당시의 상식으로 보면 그들이 악인이거나 위선자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오직 하나님 사랑만 배웠고 그것이 전부인 사회의 공기를 호흡하는 사람들에게는 당연한 것이었다. 오히려 하나님께로만 향하던 사랑을 다시 이웃에게로 똑같이 나눠야 한다는 예수님의 주장이 당시의 상식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이웃 사랑 강조는 지나치게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신앙만 강조하고 인간은 보이지 않는 공기가 가득 차 있던 시대를 향해 던진 것이다. 주님이 정말로 원하셨던 신앙의 규범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분리될 수 없으며 하나님 사랑은 반드시 이웃 사랑으로 구체화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균형이 맞아야 하는데 예수님 시대에는 인간은 없고 오직 하나님 사랑만 강조하던 시기이기에 주님은 의도적으로 이웃 사랑을 강조하여 균형을 맞추려 하셨다. 

그리고 2천 년이 흘렀다. 그 사이 세상은 너무나 많이 달라져버렸다. 지금은 예수님 당시와는 완전히 반대의 모습이다. 어디를 보아도 이제 하나님은 하찮은 존재로 전락했다. 모든 것에서 인간이 하나님을 몰아내고 스스로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두려운 인신(人神)의 시대가 된 것이다. 만약 오늘 이런 세상에 예수님이 오셨다면 여전히 인간 사랑에 방점을 찍으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