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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5. 주보 그림>
김기창, 예수 생애 연작-탄생(부분), 1951년 (작품에 대한 설명은 2020년 성탄축하예배 설교 참조) - https://blog.naver.com/midagef/222185161970
서양 미술은 기독교미술이었고 미술사는 곧 정신사다. 기독교가 세상을 지배하던 서양 중세는 하늘과 땅, 저 세상과 이 세상, 참 존재와 그림자, 신과 인간의 구분 위에 세워졌다. 당연히 하늘이 땅보다 존재론적으로 우위에 있으며 따라서 하늘이 땅을 지배하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외형은 우리와 똑같은 분이시지만 사실 그 분의 진짜 정체는 하나님이셨다. 이 점을 나타내기 위해 전통적으로 예수님 머리에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후광(Aura)을 도입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성화에서 예수님은 머리 위에 빛나는 둥근 원을 지니고 나타나신다. 후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이 후광의 영광을 누리는 이들이 되었다.
12~13세기 신의 이름으로 고딕 성당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때 그만큼 깊었던 세상의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창의적인 사람들이 지속해서 열어젖힌 새로운 세상은 인간의 재발견(부활)이었다. 르네상스가 시작된 것이다. 15세기 르네상스 전성기를 이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밀라노의 작은 성당 부속 식당 벽에 그린 ‘최후의 만찬(1497년 경)’에서 신적 존재인 예수님과 제자들에게서 이전까지는 당연했던 후광을 삭제해버렸다. 신으로부터 내려오던 빛이 이제는 자연 빛으로 해소되었다. 이후 우리들의 세계는 신비도 사라지고 인간의 역사만 남았다.
20세기 중반, 운보 김기창은 시대에 한참 뒤떨어지게도 후광을 다시 살려냈다. 요셉은 좀 서운하겠지만 메시아 출산의 주인공은 마리아이기에 아기 예수와 산모 마리아에게만 황금빛이 가미된 진녹색 아우라를 둘러주었다.
이미 레오나르도가 폐기한 신과 인간, 하늘과 땅의 구분을 500년이 지난 1950년대에 운보는 다시 드러냈다. 그는 무엇을 보았길래 굳이 폐기해버린 신성을 되살린 것일까. 2차 세계 대전 후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무섭게 충돌한 한국전쟁의 참화 속에서 화가는 신이 부재한 세상의 처연함을 목격한 것일까. 신 없는 세상은 결국 서로가 죽고 죽이는 지옥일 수밖에 없으니 그리스도의 신성이 우리와 함께 계셔야 한다고 유실되었던 아우라를 다시 그려낸 것은 아닐까.
검증할 수 없는 상상을 2021년 11월의 마지막 날, 세찬 겨울비 소리에 떠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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