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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3.27. 주보 그림- 실로암 서판, BC 700년 쯤, 터키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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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2년 03월 27일 18시 05분 13초

<2022.3.27. 주보 그림>


실로암 서판, BC 700년 쯤, 터키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1990년대에 컴퓨터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데스크 탑과 노트북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2001년에 MS가 새로운 제품을 내놓았다. 인터넷도 하고 비디오도 보고 책도 읽을 수 있는 사각형 모양의 평면 스크린 컴퓨터-이것을 태블릿(Tablet PC)이라고 했다. 태블릿이란 사각형 평면의 서판을 가리킨다.


2700년 전 쯤, 아시리아가 유다를 침공하고 예루살렘 주변을 봉쇄하여 위기에 처했을 때, 유다 왕 히스기야는 성안으로 식수를 끌어들이기 위해 수로를 건설한다. 예루살렘 성 밖 기혼 샘 수원(水源)에서부터 성 안을 관통하여 실로암 연못까지 물을 끌어오는 어려운 대 공사였다. 아시리아의 공격에 견디려면 물이 없이는 불가능하기에 이를 타개하기 위한 묘수였다. 문제는 이 공사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이다. 길이가 거의 500m에 이르는 지하 수로를 뚫는 공사였다.


마침내 수로 완성을 앞두고 터널을 뚫기 위해 양쪽에서 땅을 파던 두 그룹의 일꾼들이 만나는 지점을 기념하는 석판(Tablet)을 만들었다. ‘곡괭이 대 곡괭이’라는 이름의 이 석판에는 다음과 같은 극적인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 두 팀이 뚫어야 할 것이 약 1.5m 정도 밖에 남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이쪽에서 저쪽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본문인 이사야의 활동시기와도 중첩되는 부분이다. 우리는 투박하게 남아 있는 서판의 기록을 통해, 죽음의 기로에 섰던 예루살렘이 난공사를 마침내 성공하기 직전의 가슴 떨리는 흥분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만약 이 장면을 기록한 서판이 없었다면, 그 때의 감격은 2700년 전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만 느끼고 역사의 공기 속으로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이것이 기록의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