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안내 예배 담임목사 회의와위원회 교회학교 선교기관 커뮤니티
 
 

 
Untitled Document
2022.4.10. 주보 그림 - 도로시 라일리, 쓰러지는(추락하는) 예수 주민교회 (juminch)
gd_f73560_1649573432490.jpg (702KB)
571
파일 올린 시간 : 2022년 04월 10일 15시 52분 40초

<2022.4.10. 주보 그림>


도로시 라일리, 쓰러지는(추락하는) 예수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평상적인 업무나 별 뜻 없이 둘러보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공생애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마지막 지점에 도달하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높은 곳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이때까지도 주님의 측근 제자들마저 예수님 삶의 정점은 저 높은 곳이라는 기대를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주님을 따르는 무리들은 정말 당당하게, 마치 왕의 호위무사처럼 예루살렘으로 들어갔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어긋남은 여기서 절정에 이른다. 주님의 입성 목적은 모두가 부러워하고 염원하는 가장 높은 자리-왕으로 상승해야 한다는 제자들의 바람과는 달리 철저하게 추락하는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죄를 홀로 지고, 나와 너의 씻을 수 없는 죄까지 짊어지고 그 대가로 십자가에 달려 죽는 데까지 추락하는 것, 이것이 메시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었다. 사실 이 깊은 구원 섭리는 2천년이 지난 지금도 잘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당시 제자들이 어찌 그리 쉽사리 납득할 수 있었겠는가. 추락하는 메시아에 대한 제자들의 몰이해는 당연한 것이었다.


권력에 고소되어 심한 고문을 당한 후 자기가 매달릴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걸어가는 주님의 몰골은 처참했다. 로마 군인들의 온갖 조롱과 폭력에 시달린 주님은 머리에 강제로 가시관을 쓰셨고 온 몸에는 채찍 자국으로 피투성이가 되었다. 골고다까지 가는 길은 그야말로 고단한 형극(荊棘)의 길이었다. 고통의 기간을 줄이고 빨리 죽음에 이르는 것은 우리 주님에게는 사치였다. 그래서 주님은 받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그 몸으로 모두 받아내셨다. 사람의 몸으로 오신 주님은 육체로 견딜 수 있는 한계점에서 쓰러지고 무너졌다. 우리는 그 쓰라림의 보혈로 구원에 이른 사람들이다.


하나님이 주신 십자가가 너무 무겁고 두렵고 고통스러워서 결국 쓰러지고 말았을 때, 주위에는 온갖 폭력‧비난‧조롱‧냉소가 가득 차 있다 해도, 주님 어깨 위에는 하나님의 자애로운 손길이 닿아 있다. 쓰러지고 넘어졌지만 마침내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에 힘입어 십자가의 구원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다. 오늘 내게 닥친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은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예수님에게나 그 분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 다 똑같이 지치고 상한 어깨에 손을 얹어주신다.


기독교의 구원은 맨 바닥까지 추락해야 성취할 수 있는 구원이다. 이 비밀이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우리에게 걸림돌이다. 그러나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추락을 통한 구원이라는 기독교 복음은 변경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