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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30. 주보 그림> 루카스 크라나흐, 수도사 루터, 14.1*9.7cm, 1520년, 프랑크푸르트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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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2년 10월 29일 14시 57분 03초

<2022.10.30. 주보 그림>

루카스 크라나흐, 수도사 루터, 14.1*9.7cm, 1520년, 프랑크푸르트 

오늘은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주일이다. 개신교의 생일이나 마찬가지다. 종교개혁에는 오랜 기간에 걸쳐 수많은 신앙인들이 동참했지만 가장 중심인물은 역시 마틴 루터다. 루터(1483~1546년)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고급 교육을 받았다. 22세인 1505년에 전통의 에르푸르트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바로 박사학위 과정에 입학하여 아버지가 원하던 대로 법학을 공부하였다. 당시 출세하는 길은 법학을 공부하여 법관이나 고급관료가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루터는 박사과정에 들어간 지 얼아 안 되어 수도원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어느 날 길 가다가 강한 벼락이 내리치자 죽음의 공포 앞에서 수도사가 되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터는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 법학 공부와 아버지의 기대와 장래의 성공하는 길을 버리고 수도사가 되었다. 

당시 수도회에 들어가려면 수도원 심사관들의 철저한 조사를 받아 진정성을 확인한 후 1년 동안 수습 기간을 거쳐 최종 합격해야만 들어갈 수 있는 어려운 과정이었다. 
중세 수도원 전통에서 수도사가 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돌아서서 금욕적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회심의 사건이었다. 입회 지원자에게 수도원장은 다음과 같은 것을 엄격하게 질문한다. 자신의 뜻을 온전히 죽이는 것, 빈약한 식사, 품질이 떨어지는 소수의 옷, 낮의 고된 노동, 철야, 육체에 대한 매질, 탁발고행, 극심한 금식, 무료하고 단순한 생활을 견딜 수 있는가에 대해 예라고 대답해야만 수습 기간이 허락되었다. 기대와 능력을 지녀 전도유망한 청년이 어느 날 갑자기 그 길을 중단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하나의 사건이었다.

종교개혁의 화가 루카스 크라나흐가 수도사로서의 루터를 그렸다. 루터의 다른 초상화들은 대개 얼굴이 통통한 편이다. 20대 수도사 루터는 젊기도 했지만 수도원에서의 삶이 노동‧빈곤‧금욕이었기에 수척한 모습이다. 루터의 진정한 고뇌는 노동이나 금욕이 아니라 그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신앙의 문제였다. 당시 가톨릭 신앙에 따라서는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직접 느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루터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촉발되고 서양과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개혁은 바로 죽음과 심판의 불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와 구원을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고민에서 시작되었다. 이 보수적이고 개인적인 고민이 세상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중세에서 근대로의 이행은 르네상스운동보다도 당시 일반인들의 구체적인 생활을 직접 바꾸어 놓은 종교개혁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 중심에 루터가 있었고, 루터의 불안과 고뇌가 종교개혁의 뇌관이었다. 

오늘 우리도 같은 정신적 고뇌를 앓고 있다 ; 우리는 어떻게 구원의 확실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