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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8. 주보 그림> 엔리케 시모네트, 예루살렘을 굽어보며 눈물을 흘리심, 305*555cm, 1892년, 프라도미술관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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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3년 01월 13일 14시 30분 19초

<2023.1.8. 주보 그림>

엔리케 시모네트, 예루살렘을 굽어보며 눈물을 흘리심, 305*555cm, 1892년, 프라도미술관


예수님의 가르침, 예수님이 지향한 삶의 초점은 하나님 나라였다. 오늘 주님이 저 깊은 곳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소리로 외치셨다.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The kingdom of heaven is at hand.


새해 첫 태양이 아직 완전하게 떠오른 것은 아니지만 바다 속에서부터 시뻘건 불덩어리가 천천히 밀고 나올 때의 장관이 바로 이 모습이다. 주님은 우리가 원하는 하나님 나라가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와 있다고 선언하셨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미 해가 솟아오르고 있다. 그러니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맞지 않다. 아버지 장례에 가는 것조차도 옳지 않다. 그만큼 급박한 일이다. 우리는 무조건 준비하고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은 것은 모두 정리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주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는 현실에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한 가지를 선언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마 4:17)


회개야말로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고 희망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가장 먼저 필수적으로 해야 할 과제다. 해 마다 새해 태양은 떠오르고, 그 태양은 여전히 날마다 우리 앞에 떠오르고 있음에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변화란 태양만 떠오른다고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내 손 가까이 와 있는 것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박한 하나님 나라 앞에서 회개가 우선이다. 회개야말로 내 손 가까이 와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맞이하기 위해 반드시 선행해야 할 필요조건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하셨다. 예루살렘에서 5리쯤 떨어져있는 베다니마을에서부터 감람산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움직이신다. 산은 이미 많이 말라 있었다. 주님의 이 길이 죽음의 길임을 산이 먼저 알고 있는 터였다. 바닥은 온통 바위고 식물이 자랄 곳도 거의 없다. 겨우 사막에서 사는 선인장이 하나 있고, 이름 모를 풀은 이미 말라 비틀어져 있다.


뒤쪽에는 베다니에서부터 나귀 끌고 자기 옷과 나뭇가지를 들고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따라오고 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나는 곳의 나무는 바짝 말라 죽어 있다. 꽤나 묵은 나무다. 그러니 오래된 것이 죽은 시대에 유일한 희망은 메시아다.



전반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는 빈한하다. 대부분 머리는 헝클어져 있고 얼굴도 깔끔하지는 않다.


지저분한 옷은 치렁치렁하며 어떤 이들은 최소한의 샌들조차 신지 못하고 이 길을 따르고 있다. 예수 공동체는 깔끔한 공동체가 아니었다. 깨끗함과 지저분함 속에는 빈부의 계급성이 뼛속 깊이 박혀 있기 마련이다.


슬픈 내면을 표시하듯 주님은 위아래 어두운 옷을 입고 있다. 그는 손을 뻗어 산 아래 예루살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누가 19:41)


그리고는 끝내 울음을 터뜨리셨다.


떠오르는 햇살을 받은 예루살렘 성전은 저렇게 찬란하기만 한데 주님은 바로 그 휘황찬란한 성전을 보면서 우셨다. 이제 곧 닥쳐올 지독한 심판의 그림자를 보았기 때문이다. 태양은 떠오른다. 밝고 깔끔하고 어디 하나 구김살 없는 해맑은 태양이다. 떠오르는 태양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이 햇살을 받아 성전은 환하게 두드러지지만, 곧 다가올 심판을 예견하는 사람은 눈물을 흘린다. 회개하지 않으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파괴될 것이기 때문이다.


태양을 희망의 태양으로 만드는 것은 그러므로 그 앞에 선 우리의 회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