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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9. 주보 그림>
이드로가 광야에서 모세를 방문하다
출애굽한 모세와 이스라엘에게 광야 생활은 처음 겪는 도전이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은 고통스럽고 자유가 없었지만 파라오가 시키는 대로 하면 되었다. 이집트를 탈출하니 어느 날 갑자기 무한한 자유가 주어졌다. 자유는 선이지만 훈련되지 않은 자유는 재앙이 될 수도 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이제 자유로 선택한 결과는 오롯이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자유인의 운명이다. 이러한 현대인의 자유를 사르트르는 ‘자유에 의해 선고되었다’라고 했다. 자유가 형벌이 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이집트를 탈출해서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제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아직 먼 길을 가야 한다. 갑자기 주어진 자유 앞에서 사람들은 혼란을 겪는다. 문제가 발생하고 충돌을 빚는다. 노예 때는 생기지도 않을 일들이 일어나고 분쟁으로 공동체가 균열을 맞는다. 노예일 때는 똑같은 처지였는데 이제 그 안에서 차이가 발생한다. 그 차이는 곧바로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판이다. 민주주의가 발전한 사회일수록 시시비비의 최종 결정 권한을 가지고 있는 사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촛불혁명도 최종 완성된 곳은 사법부의 판결 아니었는가? 법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판단을 내리면 민주주의는 큰 위기를 맞는다.
지도자의 판단이 중요할수록 그가 감당해야 할 중압감은 가중되기 마련이다. 출애굽하느라 부인과 아들 둘을 처가에 두고 온 모세를 장인 이드로가 방문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만남 중에 내 삶에 유익한 것이 얼마나 있는지 잘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렇다고 이익만 좇아 관계를 만들라는 뜻이 아니라 무익한 만남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드로와 모세의 만남은 장인과 사위의 사적인 만남을 넘어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의 운명을 바꿀만큼 소중했다. 만약 이드로가 모세를 만나지 않았다면 어쩌면 모세는 단명하고 이스라엘은 지도력의 부재 속에서 광야를 떠돌다가 없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누구를 어떻게 만나느냐가 내 인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반가운 만남 후 다음 날 모세가 일 처리하는 것을 본 이드로는 따끔하게 조언한다. 개역 개정은 아주 강하게 표현했다 ; 네가 하는 것이 옳지 못하도다(출 18:17). 대놓고 잘못되었다고 한다. 가장 정확한 번역이라고 할 수 있는 표준새번역은 이렇게 표현했다 ; 자네가 하는 일이 그리 좋지는 않네.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다 ; That isn’t the best way to do it. / What you are doing is not good. 이유는 간단하다. 너와 또 너와 함께 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출 18:18). 모세가 지금 하는 방식으로 안 되는 것은 아니다. 모로 가도 서울은 갈 수 있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이 있다. 더 편하고 유익하고 효율적인 방법이 있는데 왜 굳이 불편하고 어려운 방법을 사용하는가, 이리하면 목적을 이루기도 어렵다, 그러니 그 방법은 옳지 않다.
이드로가 모세의 업무 처리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롭게 조언한 것은 곧 혼자 무리하게 담당하던 일을 적절하게 다른 이들과 나누라는 것이었다. 역할분담을 하는 것이 공동체에 유익하다. 재판에도 약식재판이 있다. 사건이 좀 가벼운 것은 복잡한 절차 생략하고 간단하게 재판하는 것이 사법부나 소송 당사자들에게도 서로 유익하다.
인생이나 사회나 교회나 왜 이런 시스템이 중요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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