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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0.15. 주보 그림> 마르크 샤갈, 모세와 불타는 나무, 49.7*36.9cm, 1966년 주민교회 (jumin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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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올린 시간 : 2023년 10월 15일 14시 12분 00초

<2023.10.15. 주보 그림>

마르크 샤갈, 모세와 불타는 나무, 49.7*36.9cm, 1966년

구약성경의 수많은 인물 중 한 명만 꼽으라면 모세다. 한 가지 사건을 찾으라면 출애굽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염원인 구원의 실행자요, 삶의 기준인 율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인물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본다. 모세의 삶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나이 사십의 이집트 왕자로서 용기를 내어 고난받는 이스라엘 동족 편을 들었지만 돌아온 건 살인자의 오명이었고, 그것으로 모세 인생의 화려함은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이집트의 끄트머리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정치‧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광야에서 양치는 목자로 이름 없이 살았다. 그리고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모세 나이 이미 팔십이다. 지금과 나이 개념이 다르다 해도 이제 몸과 마음의 전성기가 훌쩍 지나 무명의 늙은 목자였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그냥 죽어갈 인생, 후대는 모세라는 이름조차 기억할 이유가 없는 삶이었다. 

모세 자신도 이제 젊은 날의 꿈을 접은 채 별 희망도 없이 그저 소시민으로 삶을 마감하려는 그때 모세의 인생이 뒤집혔다. 지팡이 하나 들고 이집트 제국 파라오에게 당당하게 맞서 이스라엘의 노예 생활을 끝장내고 자유와 해방을 쟁취했다. 하늘과 땅의 거리만큼 먼 모세의 두 가지 인생은 호렙산에서 결정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이 중요한 장면에서 많은 화가가 불타는 떨기나무와 신발 벗는 모세를 중요한 소재로 삼았다. 그러나 이와 함께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지점은 바로 여기다.

그가 보니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그 떨기나무가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모세가 이르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출 3:2b~3a)

건조한 광야에서는 가끔 자연 발화가 일어나기에 불붙은 나무가 아주 낯선 광경은 아니다. 그래서 저만치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지만, 처음에 모세는 그냥 지나쳤다. 그런데 나무가 계속 불붙은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가던 길을 돌아와서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 것이 전환점이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러시아 출신의 샤갈이 이 장면을 그렸다. 군데군데 양들을 버려둔 채 모세는 떨기나무로 다가왔다. 나무 위로 천사가 날아가고, 해처럼 밝은 부분에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이름 야훼를 적어 넣었다. 샤갈은 불붙은 떨기나무를 활활 타는 모습으로 표현하지 않았다. 아무 전제 없이 그림을 보면 좀 깊은 가을에 흔한 우리 단풍나무와 비슷하다. 샤갈은 빨갛게 타오르는 단풍 정도로 꺼지지 않는 불이 붙은 나무를 표현했다. 떨기나무의 불이 한 번만 봐도 신기했다면 모세가 처음부터 나무를 향해 달려갔을 것이다. 그런데 모세는 처음에는 그냥 지나쳤다가 좀 이상하다 싶어서 다시 돌아와 보았고, 거기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이 모세 인생의 대전환점이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표시(계시)는 명백할 수도 있지만, 얼핏 보면 잘 모르는 때가 더 많다. 신앙은 우리가 그냥 스쳐 지나갈 수도 있을 하나님의 계시를 포착하는 힘이다. 지금 매일 반복되는 익숙한 나의 일상 속에 현존하시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 절실하다. 그러면 인생이 바뀐다. 역사가 뒤집힌다. 

우리가 눈을 부릅뜨고 초점을 모아 내 안과 밖을 성찰해야 할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