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issio Dei의 확장. 민중에서 지구시민으로 지금은 전환이 시대정신이다. 예컨대 이재명 후보의 공약을 꿰뚫고 있는 핵심은 전환이다. 전환경제, 전환사회 등. 바야흐로 전환시대인 셈인데 교회에는 어떤 전환이 요구되고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과제는 “한국사회와 성남의 50년 변화”이고 이것을 주민교회 새로운 선교의 방향잡기에 연관시켜 해석해 보라는 숙제 정도로 나는 이해했다. 그래서 우선 지나온 한국사회와 성남사회의 50주년을 진단하고, 지나온 주민교회의 50년을 진단하여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지 살피려고 한다. 그런데 성남 50년의 변화와 국가사회 50년의 변화는 서로 엮여 있다. 그래서 성남을 대한민국의 축소판으로 불렀다. 한국사회의 50년에는 전 산업사회, 산업사회, 탈산업사회가 50년의 변화에 압축적으로 담겨있다. 성남의 변화도 같은 양상이었고 주민교회 선교의 역사도 이런 변화에 조응하여 선교의 대상과 방법이 변해왔다고 볼 수 있다. 1. 성남과 한국사회의 50년의 변화 한국사회 50년의 변화는 어마어마하다. 그래서 변화를 묶어 ‘압축’으로 서술한다. ‘압축 성장’ ‘압축 민주화’ 등이다. 예컨대 정보화 수준의 변화를 보면 압축의 강도가 드라마틱하게 나타난다. 정보화의 시작은 유선전화의 등장으로부터 인데 1980년대가 그 시작이다. 국민 100명당 전화가입자 수가 20명을 넘어서는 것이 1987년이다. 인터넷은 꼭 10년 후인 1997년에 보편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한다. 태블릿 피시나 SNS같은 온라인 네트워크가 일상화된 오늘날을 생각하면 정보화의 변화속도는 그야말로 광속이다. 결혼이나 출산연령의 변화도 압축적이다. 결혼연령과 출산연령은 많이 늦어졌다. 50년 동안 수명은 19.8년이 늘어났다. 여기에 출산율이 70년대에 비해 1/4가까이 줄어 저 출산까지 겹치면서 한국사회는 급격하게 고령화되고 있다. 유엔의 기준에 따라 구분하면 한국은 2000년에 고령화 사회(전체인구의 7%)로 접어들었고, 2017년에 고령사회(전체인구의 14%), 2025년에 초고령화사회(전체인구의 20%)가 될 전망이다. 이렇듯 변화속도가 빠르고 압축적이어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라고 할 수 있다. 1-1 성남의 시작 광주대단지와 박정희 정권, 전 산업사회적 풍경 광주대단지는 전 산업사회와 연결시켜 생각할 수 있다. 우선 산업화를 위해서는 값싼 노동력 즉 산업예비군이 필요했다. 그래서 탈농을 유도하는 정책(2중 곡가제)을 쓴다. 엄청난 탈농인구들이 서울로 유입된다. “서울은 만원이다”는 1966년 이호철의 신문연재소설 제목이다. 60년대 서울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도시시설이 부족하게 된다, 당시 내가 다니던 무학초등학교 학생수가 9천 명 정도였는데, 우리 학년이 28반까지 있었고, 내 번호는 86번 이었다. 또한 무작정 상경한 가족들이 무허가 건물을 지을 수밖에 없었고 도시미관 문제로 연결되었다. 도시기반시설의 부족은 많은 도시문제를 야기했고 박정희 정부는 김현옥 시장을 부산에서부터 호출한다. 김 시장은 3 가지 문제해결 방식을 제안했는데, 최종적으로 광주대단지라는 신도시 건설 정책이 결정되고 그것이 성남이라는 도시의 출발점이 된다. 그런데 신도시를 건설한 자금이 정부와 서울시에 없었다. 그래서 찾아낸 방식이 도시시설은 나중에 건설하고 사람 먼저 입주시킨다는 기상천외한 “선 입주 후 건설” 정책이 시행되게 된다. 정부가 땅장사해서 번 돈으로 도시를 만드는 방식인 셈이다. 그래서 사업의 명칭이 “광주군 중부면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 사업”이다. 애초에는 조성사업이었는데 조성을 지우고 경영으로 바꿔치기 했다. 그러니 택지조성 사업이 부실했을 수밖에 없었다. 초석건설 (후에 정태수의 한보주택)이 시공했는데 그냥 껍질만 벋기고 새끼줄을 긋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마누라 없이 살아도 장화 없이 못 산다”는 우수개 소리가 돌았다. 그런데 땅장사가 잘 되어 분양가를 최고 수준으로 결정 해버린다. 주민들은 “토지불하가격 시정 대책위원회”를 결성(성남제일교회 주도)하고 싸우기 시작한다. “100원에 산 땅 만원에 폭리 말라”가 주요 구호였다. 이 싸움에 참가한 주민이 5만 명이고 이 사건을 8.10 광주대단지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 사건의 효과로 정부가 주민들의 요구를 무조건 들어 준다. 이렇게 생겨난 도시가 성남시다. 이때 이 도시의 특징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빈곤’이다. 아직 도시가 갖춰야할 기반시설이 태부족하고 도시를 묶어낼 사회적 연대란 존재하기 어려웠다. 이시기 성남의 3多는 술집, 교회, 여관이었는데 모두 사회적 연대의 부족을 메우기 위한 시설이라 할 수 있다. 아직 사회가 안정되지 못하고, 정주의식이나 이웃과의 교류가 만들어지기 어려운 수준이다. 1-2 분당신도시 건설과 노태우의 산업사회 1980년대 중반 한국은 산업화의 피크라 할 수 있다. 이제 가난 극복보다 신분 상승의 유일한 통로인 교육이 각광을 받게 된다. 농촌에서 서울로, 서울에서도 강남으로! 그래서 강남의 주택 수요가 급증한다. 당연한 결과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게 되고, 강남과 강남이외의 주택가격 격차가 심화된다. 따라서 소득 불균형에 대한 불만이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다. 노태우 대통령 후보는 주택 200만호 건설공약을 앞세우고 당선된다. 산본, 평촌, 중동, 일산, 분당의 신도시 혹은 신시가지가 건설되는데 이를 1기 신도시라 한다. 1기 신도시는 산업화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고 이것이 분당신도시로 연결되는 셈이다. 1기 신도시 중 분당은 강남의 집값을 잡겠다는 목표가 확실했다. 그리고 일산은 강남 이외의 시민 분산을 목표로 했다. 강남을 분산시키기 위해서는 강남을 능가하는 교육도시 분당이 필요했다. 그래서 “선 교육 후 건설”이 분당건설을 대표하는 카피이다. 강남의 ‘8학군을 뛰어 넘는 분당’을 대통령이 공언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8학군에 속한 학교들을 옮겨오지 않는 한 군인 출신 대통령도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도입한 제도가 특수학군제이다. ‘특수’는 당시의 고교 평준화 정책을 특별하게 유보하겠다는 것으로 서열화하겠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서현고등학교이고, 이 학교는 120명의 서울대 합격생을 내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다. 그래서 강남사람들이 분당으로 이사 오기 시작한다. 대한민국의 대표하는 중산층의 도시 분당이 등장하는 배경에는 이런 정책적 특수가 작용했던 것이다. 그런데 분당이 성남시의 한 행정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못사는 도시 성남에 섞일 수 없다는 불만은 단순한 계층적 욕구를 넘어선다. 분당이 독립하지 않으면 교육의 질도 나빠지고, 아파트 가격의 하락도 우려된다는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분당시 독립운동은 가라앉게 되지만 분당주민들은 보이지 않는 장벽을 만든다. 이것을 어떤 인류학자는 분당의 사회적 생산이라고 불렀다. 서민의 도시와 중산층의 도시가 병존하면서 사회, 행정, 문화적 비용이 발생하게 되고 도시 통합의 문제가 부각되게 된다. 분당은 철저하게 중산층의 도시이다. 거주민들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고 그렇게 행동한다. 그것이 사회적 생산이다. 실질적으로 생산효과를 가지고 있다. 일산과 분당의 같은 평수 아파트 가격의 차이가 이를 말해주고 있다. ‘천당 밑에 분당’이란 말에는 사회적 생산에의 욕망이 잠재해 있다. 1-3 판교신도시와 IMF 그리고 탈 산업사회 도시의 등장 IMF는 한국 경제시스템의 취약구조를 여실히 드러낸 사건이다. 구조 자체가 흔들려버리는 사건이었다. “Buy Korea”란 구호는 국가에 대한 기존의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판교, 위례, 동탄 등 11개 신도시를 2기 신도시라고 하는데 2기 신도시를 대표하는 곳이 판교이다. 판교의 개발 정신은 “선 환경 후 계획”이다. 도시건설의 콘셉트를 삶의 질로 설정한 최조의 도시가 판교이다. 주택의 단순한 공급의 차원을 넘어선 정책이다. 고급 저밀도 친환경 저층 아파트의 공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판교의 인구밀도는 98명/ha로 분당의 절반이다. 대한민국 최초로 100명 이하의 저밀도 도시이다. 한국의 ‘비버리 힐즈’를 건설하겠다는 야심이 그냥 홍보차원에서 하는 말만은 아닌 듯하다. 판교는 상류층 도시이다.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상류층을 위한 도시로 개발했다. 따라서 이 도시는 탈 산업사회 문화를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것이다. 1-4 구시가지의 재개발 50년이 되어가는 구시가지는 20평 택지, 도로, 우수하수 분리, 도시미관의 문제 등으로 재개발이 민선 2기에서부터 추진되어 왔다. 난맥상을 보였던 재개발 문제가 10여 년 전부터 시행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재개발은 주거형태, 계급구조, 생활문화 등을 급격하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그 규모다 신도시 급이다. 예컨대 상대원 지구 중 하나는 1만 1천 세대 규모로 대장동의 두 배가 된다. 이 재개발로 인하여 이제 서민층의 도시가 중산층의 도시로 탈바꿈 되면서 기존에 거주했던 주민들이 밀려나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나타난다. 이상에서 간략하게 언급한 한국사회 50년의 변화와 성남의 변화는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다. 그리고 변화의 흐름은 산업화의 시대적 흐름과 맞물린다. 2 사회변화와 주민교회 선교 양상의 변화 (공간의 변화) 2-1 광주대단지와 빈민특수지역 선교 주민교회 설립과 성남시 승격은 그 출발시점이 같다. 주민교회 설립배경에는 ‘한국 특수지역 선교위원회’가 있다. 광주대단지 사건은 특수지역(빈민)으로 이 위원회의 주목을 받게 되고 위원회는 이해학 전도사를 파송하여 교회를 설립하게 한다. 이 전도사는 교회 시작 반년 만에 중앙정보부에 연행되는데, 특수지역선교의 전략과 분리해서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이해학 전도사는 1년 만에 긴급조치 위반으로 구속되는데 1년 2개월 후에야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다. 실업자 대책, 직업상담, 여성노동자 조직, 노동자 야학, 주민신협 창립 등 선교대상과 내용이 가난하고 눌린 사람들이고 그들의 일상과 관련된다. 그것은 가난이 민중의 삶을 어떻게 왜곡 시키고 따라서 선교가 가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그 극복(해방)에 기여할 수 있는가가 주민선교의 기본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2-2 분당 신도시의 시기와 민주 통일운동 선교 80년대는 전두환 노태우 군사정권의 폭압적 군사독재와 5.15 광주 민주화운동의 발생, 그리고 주민교회 김종태 열사의 분신을 시대적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 주민교회 선교는 민주주의 운동과 통일운동을 통한 민중의 해방 선교라고 볼 수 있겠다. 성남 NCC, 성남 YMCA, 기독교도시빈민선교협의회, 성남지역노점상연합회,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성남지역본부, 국민회의 성남본부, 신협과 생협 등의 조직사업이 이 시기 선교전략으로 두드러진다. 민중의 구원은 단순한 가난의 극복을 넘어서 민족과 민주의 문제에서 비롯되고 있다. 따라서 선교의 방식이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우회해서 존재할 수 없다. 사회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함께 하는 투쟁이 바로 선교 이었다. 이것이 산업사회에서 주민교회가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선교이었다. 2-3 탈 산업사회의 등장과 생명공동체 운동으로서의 주민교회 선교 문화와 가치가 중요해진 시대에 대한 대응으로서의 생명공동체 운동은 선교 방향의 획기적 전환이라고 여겨진다. 광주대단지의 가난, 산업사회 모순의 산물인 분당과 민주 통일 운동으로서의 선교에서 생명공동체로서의 정신적 종교적 운동으로 나아가는 흐름은 주목할 만하다. 세 시기별 선교 양상의 특징을 요약하면 1기에서는 선교의 대상이 분명하고, 방식도 자활 등 비교적 간단했다면 2기에서는 거대 담론과 연계 되면서 그 대상이 주류 정치권, 자본, 반통일적 제국세력까지 확대 되는 등 양상이 매우 복잡하게 변했다. 3기에서는 생명과 생태가치의 몰락을 회복하는 운동이 선교의 대상이 되면서 피부에 쉽게 와 닿기에는 너무 관념적이었다는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상당한 열정을 쏟아 부었지만 그 성과는 1 2기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나는 평가한다. 3 기후 비상사태와 지역신뢰위기, 그리고 아버지 상실의 정신병적 위기와 주민선교 50년 변화의 마지막 시기에 들어 닥친 코로나 사태는 50년의 엄청난 변화를 뛰어넘는 새로운 수준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로 양분할 수준의 변화이다. 거기에 성남 도시특성은 신뢰 위기의 문제를 내재하고 있다. 한편 탈산업사회 정신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병적 징후들은 정상적 사회성을 예측하지 못하게 하는 문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는 선교 교회(missionary church)로서의 주민교회 선교의 새로운 과제로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이 세 가지 숙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3-1 환경 행동가적 주체를 키워내는 선교 코로나 시대의 한 복판에서도 우리는 기후붕괴에 대해 둔감하다. 인류가 기후문제를 위기로 받아들이고 유엔총회에서 대응책을 논의하기 시작한 해가 1972년 스톡홀름에서다. 주민교회는 그 이듬해에 선교를 시작한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 본대로 생태계 붕괴의 문제는 글로벌한 이슈로 부각되지 못한 상태이었다. IPCC라는 유엔기구가 있다. 기후변화문제에 대하여 각국 정부차원에서 대책을 모색해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진 큰 기구이다. 그런데 이 기구 창설을 주도한 사람들은 모두 과학자들이다. 이들은 지구를 그대로 두면 어떤 심각한 일이 생기는지를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수천 명의 과학자들이 각각 자기 나라의 정부수반들을 설득해서 유엔에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설득한다. 그래서 이 기구에 과학자들이 많이 포진해 있다. 이 기구가 매년 내는 IPCC 보고서는 전 세계 과학자들이 작업결과물이어서 신뢰성과 설득력이 있다. 이 보고서는 산업혁명이후 지구 기온이 급격하게 올라가고 있고 이 속도를 1.5도씨로 묶어내지 못한다면 엄청난 재앙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고 절박하게 경고하고 있다. 2019년 파리에서 열린 총회에는 당사국 전체의 정부대표뿐만 아니라 유엔사무총장, 교황까지 참여하고 시민단체, 산업계 등 2만 명이 참여한 기후변화에 대한 최후 담판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국제회의로서는 유례없이 진지하고 절박한 논의가 펼쳐졌다. 각국마다 감축목표(NDC)를 제출했다. 그런데 그 목표로는 2도씨 상승도 막지 못하는 것으로 IPCC 과학자들은 판단하고 목표의 상향을 요구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4개 나라는 목표치 설정이 부도덕한 측면이 강해서 새로운 목표를 제시할 것을 압박해왔다. 이들 4개 나라들은 ‘세계 4대 기후악당국가’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중이다. 기독교는 창조신앙이라는 이름하에 대자연으로부터의 자유추구, 정복(다스리라)과 생육하고 번성의 대상으로 규정된 성서의 정서를 기반으로 자연 파괴의 근거를 제공했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인간중심주의와 기술만능주의의 결합이 근대문명의 사상적 기반으로 작동하면서 오늘의 위기를 가져온 것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무튼 기후문제에 대한 기독교의 책임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한편 로마서 8장 18~25에는 대자연이 우리 인간이 바뀌길 기대하고 있음을 바울의 예민한 시선을 통하여 살피고 있다. 이정배 교수는 소비문화시대 모든 것을 돈으로 해결하는 생활방식 때문에 기후문제에 둔감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그는 ‘에코지능’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어떻게 에코지능이 둔감해졌는지를 살피고 있다. 그러면서 기후붕괴 시대의 인간상의 모델로 노아를 추천한다. 노아는 세계가 멸망할 것을 예민하게 알아채고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방주와 자연생명체들을 예비했었다. 그 감각을 에코지능이라 부르고, 이제 “백만 명의 노아와 백만 개의 방주”를 예비하는 일에 교회가 나설 것을 설득하고 있다. 환경문제는 지구의 문제이다. 1987년 부룬트란트라는 여자 수상이 주도했던 위원회에서 지 지구의 문제는 어떤 개별 국가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의 문제임을 천명했다. 이 지구나 국가, 개인의 삶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이제 우리 모두가 지구시민으로 함께 헤쳐 나가야할 과제이며, 우리는 공동운명체임을 확인하는 선언인 것이다. 이때부터 ‘지속가능한’(Sustainable)이라는 단어가 영원할 것으로 여겨지던 사실들 앞에 붙기 시작했다. ‘지속가능한 개발’, ‘지속가능한 지구’ 등. 지속가능성을 물어야 할 대상에 이제는 교회도 포함된다. “지속가능한 교회”(!). 지속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인 것이다. 나는 환경교육 현장가로서 과학자나 정부의 힘만으로 이 엄청난 과업을 해결해 낼 수 없음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이 문제 해결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만 지구시민 모두가 삶의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의식화’만으로는 안 된다. 대단한 결단이 필요한 종교적 문제이다. 그래서 과학자들이 종교에 도움을 요청하게 된 배경이다. 대자연의 운명과 인간의 운명이 公屬 관계임을 아는 것이 하느님의 청지기성(Stewardship)의 본질이고 자연을 대상으로만 인식하는 인간은 ‘종교적 자폐증’이라고 유명한 토마스 베리는 한탄하고 있는 중이다. 한국교회가 교회차원뿐만 아니라 교단(장로교 통합) 수준에서도 환경선교를 얘기하면서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운동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원래 ‘선교적’이라는 말은 Missionary인데 환경선교가 갖고 있는 특성을 강조하기 위해 missional이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주민교회는 이미 지역과 민주 통일 등의 선교를 해오고 있었으므로 굳이 missional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고, 한국교회들의 환경선교를 넘어서는 신학과 선교전략을 가져갈 필요가 있다고 본다. 즉 즉자적 대응이 아니라 대자적이고 신학적 전환이 밑바탕에 깔린 환경선교가 필요할 것이다. 3-2. 지역선교의 대상으로서의 성남이라는 공간의 변화 선교의 대상으로서의 지역의 변화는 선교전략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한다. 주민교회는 지역선교의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지역의료선교, 실업자 대책위, 노동자야간학교, 독서운동 등 지역 속으로 들어가는 선교를 수행해 왔다. 그런데 설립초기 선교의 대상이었던 의료소외계층이나 노동자, 실업자지원 사업 등의 상황은 실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우선 성남시의 변화는 파행적으로 이뤄졌다. 광주대단지로 구도심이 형성되었고, 분당신도시와 판교신도시 등 신도시 급의 변화가 이뤄져왔다. 거기에 구도심의 재개발도 신도시 규모의 대형 급 변화가 이뤄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대규모 변화들이 만들어 내는 특성은 기존 삶의 방식과 사회적 연대, 지역 고유의 유대와 문화 등도 한꺼번에 뒤집어 엎어버리는 피해를 동반한다. 또한 재개발로 공급되는 주택 가격의 상승은 지금까지 거주했던 사람들을 다른 지역으로 내보내는 젠트리피케이션 (gentrification) 현상으로 연결된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재개발이 아닌 도시재생이 고려되지만 거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혀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도시형성이나 재개발 과정에서 나타나는 대규모의 공간변화의 측면에서 관찰되는 성남이라는 도시의 특성은 인공도시성과 신흥도시성이라 할 수 있다. 자연적 과정을 통한 사회 유대관계가 형성되는 안양, 수원, 부천 등의 자연도시에 대하여 인공도시는 일상을 통한 관계 맺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일상보다는 과거의 인연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향우회가 중요한 공동체가 된다. 성남에는 8도의 향우회가 다 있다. 심지어 경기향우회도 있다. 그리고 향우회 연합(시민화합협의회) 조직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있다. 그러나 이런 조직을 통한 주민연대는 일상적 현실을 외면하게 하는 심각한 부작용이 있다. 이는 정주의식의 부족현상으로 나타나는바 “성남에 고향을 심자”라는 카피는 이런 현실을 대변하고 있다. 또한 신흥도시성도 유사한 효과를 가져 오고 있다. 행정에 대한 불신, 이웃에 대한 불신, 어차피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하는 것이고, 타인과 연대해서 풀려고 하지 않는다. 이제 ‘성남세대’라는 말이 실질적인 현상으로 작동하고 있지만 아직 50년도 안 된 도시인 것이다. 이러한 도시의 특성은 신뢰의 결핍으로 연결된다. 성남이 타 도시에 비하여 민원건수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불신의 결과이다. 그런데 이러한 불신은 많은 행정비용과 사회적 효율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사회는 신뢰, 협동, 참여, 연대, 규범, 네트워크 같은 사회적 동력이 움직이지 못한다. 법을 지키는 사람만 손해라는 생각이 넘쳐나는 사회는 죽은 사회이다. 반대로 신뢰 협동 참여 등이 잘 작동하는 사회는 많은 생산효과를 가져온다. 이 효과에 주목하여 사회학자들은 이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부른다. 성남에 사회적 자본이 빈약하다는 증거는 많다. 문제는 누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느냐 인 것이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로서 믿음을 내세우는 종교가 기독교이다. 이미 주민교회는 주민신협, 생협 등의 운동을 해온 ‘신뢰선교’의 선구자이다. 그러나 이제는 개별적 차원의 접근 수준을 달리하여, 전체 성남시의 신뢰수준을 높이는 접근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개별 공동체를 설립, 강화하는 방식에서 전체적 공동체운동이나 협동조합 혹은 사회적 경제 네트워크 등에 종교적 허브로서의 기능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3-3. 포스트 코로나와 4차 산업이 가져온 거대 담론의 失效현상과 선교의 대응(시간의 변화) 탈 산업사회로의 변화는 일상의 문화와 생각들을 바꿔 놓았다. 개인중심주의 등은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민주, 민족, 정의 등의 거대 담론은 이제 힘을 잃어가고 있는 듯이 보인다. 소위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20 30 세대들의 생각들은 촛불을 낡은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듯 보인다. 이들의 정치적 취향은 전세대의 그것과 완전히 다르다. 국가나 민족 차원의 이슈에는 반응하지 않다가도 자신의 이권이나 승패와 관련된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에는 열광적으로 반응한다. 예컨대 남성의 군복무 가산점에 대한 여성들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신들만 손해라는 생각이다. 페미니즘에 대하여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는 식이다. 조국사태에서 이런 반응이 두드러졌는데 반칙은 공정경쟁을 위반한 것이고 자신의 입학경쟁에 직접 영향을 끼칠 수 있으니 비난 받아야할 사안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유명 정치인의 반민족적 발언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런 심리상태를 병적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른다. 자기중심성이 너무 강해 병적 징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리구조의 원인으로 아빠의 부재를 꼽는다. 이제 한국사회에서 자녀의 교육은 엄마의 몫으로 넘어갔다. 강남 엄마를 넘어서는 분당엄마를 생각하면 쉽다. 아이는 아빠에게서 거절을 경험한다. ‘안 돼!’라는 말을 통하여 사회의 규범을 학습한다. 소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체험을 통하여 사회를 배운다. 그런데 엄마는 법이 아니라 승리의 규칙을 학습시킨다. 경쟁에서 이기는 규칙, 성공하기 위한 전술을 학습한다. 병적 나르시시즘은 아빠의 부재에서 비롯된다고 한다. 사회의 병적나르시시즘을 예방하기 위하여 누가 그 기능을 가지고 있나? 전통적 유교사회에서는 강력한 규범이 작동했다. 법 이전에 예절을 지키지 않으면 사회에서 함께 살기 어려웠다. 그래서 개별주체가 위축될 정도로 너무 강하여 주체적 성장을 막는 폐해가 염려될 정도였다. 민주화가 무너진 시대에서는 천주교와 개신교가 선지자의 역할을 목숨을 걸고 수행했다. 이제 개별화가 사회 자체의 존속을 위협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가 아버지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주민교회는 민주화 운동이나 통일운동을 통하여 건강한 사회를 향한 아버지의 역할을 해왔다. 이제 그 운동의 대상이 바뀌고 있다. 쉽지 않지만 그것도 주민교회의 몫이라고 본다. 4. 선교의 대상을 어떻게 설정하고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이상에서 본 것처럼 선교대상의 경계가 비가시적으로 변화하고 있으며 따라서 다양한 프로그램과 매력적인 접근방법이 요구되고 있다. 주민교회 선교의 새로운 비전이 필요한 것이다. 비전이 수렴되면 그것을 통하여 엮어지는 선교전략과 과제 등이 체계적으로 모아져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Missio Dei의 확장, 민중에서 지구시민으로”를 예시한다. 이는 30주년의 “민중의 수레를 끌고 새 하늘 새 땅으로” 비전과 비교되는데 이 둘을 연결하는 것이 우리가 살펴본 한국사회와 성남사회의 변화가 될 것이다. 이제 민중이라는 계급은 경계가 흐려지고 있는데 대하여 교회 선교는 통합적 우주적인 곳을 향하여 종교적 자폐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2022. 2. 19 하 동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