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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월순(김해성 목사 모친)_생명선교 20년, 나는 길거리 가족의 어머니[2006.02.28] 주민교회 (juminch)
2014년 03월 11일 06시 00분 00초 545
생명선교20년, 나는 길거리 가족의 어머니
민중교회와 그 가족을 바라보는 엄마의 생각 한자락

편집부 webmaster@ecumenian.com


안월순(김거성, 김해성 목사 모친)
엄마 고아가 부러워요
1980년 5월 서대문경찰서 유치장앞에 섰다.
차마 큰 아들(*김거성)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 볼 수가 없다.
폭행과 고문으로 얼굴부터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
끝내는 고통스러워하다가 고문 이야기도 튀어 나왔다.
“복학생들을 다 잡아다 놓고 서로 이간질을 시키는데 견딜 수가 없어요”
“목사가 되려는 내가 뒤집어쓰고 재판받고 나갈께요”
“다시는 면회 오지 마세요”
“엄마! 고아가 부러워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눈물만이 흘러 내렸다.

▲ 김거성, 김해성 두 아들을 민중교회 목회자로 둔 안월순 권사. 그는 스스로 '길거리 가족의 어머니'라고 한다.

1979년 10월, 박정희가 살해당하자 큰 아들이 22개월 만에 석방이 되었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수감된지 22개월 만의 일이다.
아들을 품에 안은 기쁨도 잠깐, 또 다시 체포되어 간 뒤 벌어진 일이다.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이내 작은 아들(*김해성)도 체포되어 갔다.
눈앞이 캄캄하고 눈물도 나오지 않는다.
뜨거운 방안에 넘어진 양초처럼 온몸이 바닥으로 녹아 스며든다.
이 일을 어찌 할거나?
“주여! 우리를 살려 주소서!”
이후 큰 아들은 결혼을 하여 첫 딸을 낳았는데, 이름을 ‘민주’라고 지었다.
얼마나 민주주의가 사무쳤으면 그리했을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더니 정말 미워 죽겠다!”
1986년 11월, 작은 아들이 민정당사 앞 시위로 다른 목사님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종로경찰서에서 폭행을 당해 뇌진탕으로 정신을 잃고 병원에 실려 갔다.
고막이 파열되고 얼마나 밟혔는지 온 몸이 온통 파랗게 멍들어 있다.
몇 달 동안 입원실에는 간호원 대신 경찰관 2명이 온종일 지켜 서 있었다.
그 후 퇴원을 한지 얼마 안되어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었다.
작은 아들이 길거리에서 성남에서 유세중인 노태우 후보를 만났었단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구호가 터져 나갔다나.
“광주학살 책임지고 노태우는 물러가라!”
88특수경호대가 비호같이 덮쳤고 내쳐진 개구리처럼 아스팔트 위에 이내 늘어져 버렸다.
끌려간 닭장차에서 주민등록증 제시 요구를 거절하다가 맞아 턱뼈도 깨져 버렸다.
이건 순 계란으로 바위치기가 아닌가?
성남 지역에서 취업을 봉쇄하는 블랙리스트가 돌아 다녔다.
그 안에는 주민교회와 산자교회의 교인 명단이 가득 차 있었다.
‘선교 자유 수호기도회’가 열리고 항의하는 교인들 몇이 연행되었다.
두 교회는 예전에 그러했듯이 이내 성남경찰서 정문을 봉쇄하고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하는 중간에 난입한 경찰들의 폭력으로 부상당한 교인 13명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작은 아들은 갈비뼈 두 대가 부러지고, 나는 팔꿈치 뼈가 부서졌다.
어쩔 수 없이 조그만 병실의 침대 두 개에 엄마와 아들이 마주보고 입원을 하였다.
작은 아들이 웃는 얼굴로 눈을 찡긋하며 나에게 신호를 보낸다.
십여 차례 폭행을 당하고 입원하는 작은 아들을 보면서 나도 툭 한마디를 보낸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더니 정말 미워 죽겠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더니 작은 아들은 어느 날부터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들러붙었다.
그러더니 끝내는 주민교회를 막고 외국인노동자를 연행하는 법무부 직원들과 충돌하였다.
결국은 구속이 되었고 매일이다시피 석방촉구기도회가 성남 검찰청 정문 앞에서 열렸다.
솔직히 나는 그 시간이 매우 두렵고 떨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새까맣게 둘러싼 경찰에 포위된 채 드려지는 일촉즉발의 기도회이기 때문이었다.
휠체어에 앉은 병중의 권사님, 백일도 안 된 아이를 비롯한 민중교회 교우들이 함께 하는데
내 아들 때문에 또 누가 잡혀 가거나 다칠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 시간들이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다시금 한숨이 나온다.
“대통령 누가 됐지?”
1998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남편(*김문재장로)이 방광암으로 수술을 위해 입원을 했다.
공교롭게 수술날짜가 대통령 투표 날이었고 남편은 수술을 미루어 달라고 사정을 했다.
거절을 당하자 ‘그러면 투표를 하고 와서 수술 받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여의치 않자 중국에 있는 딸(*김영지)에게 전화해서 했다.
이 세상에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고, 꼭 보고 싶으니 한국에 나오라는 전갈이다.
그런데 급하게 나온 딸에게는 당신 대신 투표를 해야 하고, 한 표가 급하다는 것이다.
16시간의 긴 시간동안 수술이 이루어 졌고 죽음의 문턱에서 뒤늦게 깨어나게 되었다.
긴장을 하고 있는 가족들에게 정신을 차리면서 희미하게 묻는 첫 번째 말이 가관이었다.
“대통령 누가 됐지?”
꿈에도 그리는 민주화의 소망이 아니었을까?
결혼기념일의 고마운 작은 케익
나는 한신대학에 다니던 막내딸(*김영미)에게 잔돈을 주며 가끔 전화를 하도록 했다.
전화가 오지 않으면 시위를 하다가 잡혀가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 때문 이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잘 지켜지지 않았다.
건국대 사건이 터지던 날 막내딸은 여지없이 그 현장에 있었다.
때마침 그날이 우리 결혼기념일임을 생각하고 막내딸은 작은 케익을 사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금 돌아갔으나 들어 갈 수 없어서 빙빙 주위를 돌기만 했다.
얼마 후 진압이 되자 시위대 대부분이 구속이 되었고, 모진 폭행과 고문이 있었다.
어느날 막내딸이 늦은 밤에 눈이 퉁퉁 부어 집으로 돌아 왔다.
석방된 가장 친한 친구가 연못에 뛰어 들어 자살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풀어 내면서 연신 눈물을 훌쩍 훌쩍 쏟아 낸다.
언제나 이런 비극의 막은 닫힐 것인가?
길거리의 가족모임(?)
가끔 집안 모임이 있으면 이런 저런 밀린 이야기 보따리가 풀어진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집이 아니고서도 집안 모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엄마! 집회 현장에서 외삼촌(*안남영)도 만나고, 오빠들도 만나요”
“거기에서 오늘 이해학 목사님이 말씀을 하셨어요”
어느 새 우리의 가족이 되신 이 목사님 이야기까지 곁들여 진다.
나는 분명히 단언하건대 이제 길거리 가족 모임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생명선교연대 20주년 기념식에서 낭독하는 동영상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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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명선교연대 창립 20주년 기념식에서 낭독된 것이며, 동영상을 보실 수도 있습니다.


입력 : 2005년 11월 0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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