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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서본문
요한일서
2장 15~19절, 3장 10~19절, 4장 16b~21절
<요한일서 2장 15~19절>
15 여러분은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누가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속에는 하늘 아버지에 대한 사랑이 없습니다.
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 곧 육체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세상 살림에 대한 자랑은 모두 하늘
아버지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가리킴
17 이 세상도 사라지고, 이 세상의 욕망도 사라지지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습니다.
18 어린이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압니다.
19 그들이 우리에게서 갔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더라면, 그들은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그들은 모두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3장 10~19절>
10 하나님의 자녀와 악마의 자녀가 여기에서 환히 드러납니다. 곧 의를 행하지 않는 사람과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 아닙니다.
11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소식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 우리는 가인과 같은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한 사람이어서 자기
동생을 쳐죽였습니다. 무엇 때문에 그는 동생을 쳐죽였습니까? 그가 한 일은 악했는데, 동생이 한 일은 의로웠기 때문입니다.
13 형제자매 여러분, 세상이 여러분을 미워해도 이상히 여기지 마십시오.
14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갔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이것을 아는 것은 우리가
형제자매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15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는 사람은 누구나 살인하는 사람입니다. 살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속에 영원한 생명이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여러분은 압니다.
16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17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 머물겠습니까?
18 자녀 된 이 여러분, 우리는 말이나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19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진리에서 났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b~21절>
16b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사실은 이 점에 있으니, 곧 우리로 하여금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담대해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사신 대로 또한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살기 때문입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두려움은 징벌과 관련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20 누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 형제자매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보이는
자기 형제자매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21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자매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계명을 주님에게서
받았습니다.
(성경전서, 표준새번역 개정판)
▣ 요한
1서 성경공부 개괄
1.
요한 1서는 신약 성서 안에서 가장 친숙한 말씀들을 담고 있는 서신입니다. 예를 들면,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쫓습니다" (4:18 표준 새번역) 라든가, 우리에게 엄청난 도전을 주는 다음의 질문이 있는 서신입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3:17). 그러나, 제 생각에 전체적인 서신이 풍기는 분위기는 복음의 이름으로 다른 이들을 수용하기보다 거부, 배타시하는 사고방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2.
요한 1서 기자가 속한 교회 공동체는 당시 외부 적들과 내부의 적들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었고 그 상황에서 아주 불안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본 서신은 이런 공동체 상황을 확실히 이해하고 있었던 지도자에 의해 쓰여 진 서신입니다. 이 기자의 입장에서
요한복음서의 행간을 읽으면, 이 공동체는 유대교 회당에 속한 공동체였다는 점, 그러나 유대교인들에 의해 회당에서 추방을 당했고, 그런 점에서 왜
제일의 적이 유대교인들 이었는지 해명됩니다. 그러나, 요한 서신에서는 새로운 적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신학적 입장의 차이로 공동체를 떠난
자들입니다. 이들에 대한 공격이 서신의 주축을 이룬다고 하겠습니다. 다음 2장 말씀을 봅시다: "자녀 여러분, 지금은 마지막 때입니다. 여러분이
적그리스도가 올 것이라는 말을 들은 것과 같이, 지금 적그리스도가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들이 우리에게서 떠나갔지만, 그들은 원래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우리에게 속한 자들이었다면, 우리와 함께 그대로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2:18-19). 이들 분리주의자들은
"거짓말쟁이"로 "잘못된 예언자" 이며 "악의 힘에 종속된 자"이자 "하나님의 적"으로 전해집니다.
3.
요한 1서는 사랑을 강조한 서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4:7).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도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4:16). 그러나 이들이 말하는 사랑은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만을 위한 사랑이요, 이른바 같은 부류, "끼리 끼리 사랑"입니다. 공동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 속한 자들이요, 서신
기자는,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므로" (3:13)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마십시오" (2:15)라고 권면합니다. 이 입장을 다르게 말한다면, 본
서신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은 엄청나게 이분법적입니다. 그들은 악마의 자녀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3:10). 그들은 가인과 같은 살인자들이며, 우리는 그의 동생과 같은 의로운 자들입니다 (3:;12-15).
그들의 증오로 가득찬 행위는 결국 악이며, 우리의 사랑으로 가득찬 행위는 선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과 한
통속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보호하고 대신 공동체 속한 서로 서로에게 의존하도록 하라는 권면이 이어집니다.
4.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죄인을 용서하고 적을 사랑하는 말씀은 요한 1서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마태,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께서 하신
말씀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마태 5:46) 혹은 그것이 너희에게 무슨 장한 일이 되겠느냐? (누가 6:32)." 분명한 건 본 서신을 쓴 기자는 이 두 복음서에 나온 말씀을
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독교의 황금률도 이 서신엔 없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본 서신이 담고 있는 함축된 의미는
"너희의 형제 자매를 사랑하여라. 그러나 다른 사람이 너희를
공격하기 전에 너희가 먼저 그들을 공격하여라" 이런 의미를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요한 1서가 속한 공동체가 너무나 소수였고 소외를 받았던 상황이었기에, 그들에게 내부적으로 외부적으로 위협을 가했던 적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꼈는지 이해가 갑니다. 또한 왜 내부 공동체원들을 한 편으로 그 밖에 있던 무리들은 다른 편으로 편가르기를 했는지도 이해할 것
같습니다. 이해는 가지만, 이런 배타적 태도는 영적 안녕을 생각할 때 위험하기 그지없는 태도입니다. 이런 태도가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권력과
야합이 되었을 때, 이 문제는 전 세계의 안녕까지 위협을 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6.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진정한 의미의 인간 공동체로 만드는 비젼을 가지고 이렇게 모였습니다. 이 비젼은 세상을
"내 편 네 편"으로 가르는 분열의 비젼과는 거리가 멀며, 오히려 정반대로
우리는 모두가 상호 연결되어 있다는 진리를 제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진리가 함축하고 있는 의미는 여러 가지겠지만, 그 중 한가지 의미는
안보는 결코 일방적인 방어의 의해 달성될 수 없으며 오직 부정의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다른 이들을 향한 관심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세계 교회 지도자들이 새로운 무기의 개발로 안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를 지원하기 보다, 밀레니엄 개발 목표를 지지하고 제3세계
부채 탕감이라는 기치 하에 벌였던 희년 캠페인에 대해 더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7.
물론, 여러분들이 요한 1서 논리에 따라 산다고 한다면 제가 말하는 이러한 이야기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논리, "그들이 우리를 증오한다," 는 기본 전제 하에서, 어떻게 다양하고 상호 의존적인 공동체를
만들어 가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안보에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예언자들의 말씀, "정의가 유일한 안보의 기본이다" (사 32, 미 4)는 뜻과 우리의 비젼은 일치하지 않을까요?
또한 "한 지체의 고통과 영광이 모든 이들의 고통과 영광에 영향을
준다"는 사도 바울의 비젼과 같은 비젼이 아닐까요? (고전12)
그리고 바로 이것이 복음이 아닐까요?
8.
상호의존한다는 비젼은 교회에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요한 1서 기자처럼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분열하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어 각 자 가진 달란트를 받아들이고 서로를 향한 사랑을 세상에 보여줌으로써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는 그 복음을 세상에 전파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의미의 공동체는 다른 이들을 배제한 상태에서 형성될 수
없습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그들, 우리의 형상과는 다른 존재들을 보도록 요청함과 동시에 볼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의 힘이 결국 우리와 비슷하게 생기지도 않았고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내시며, 그 연결을 통해
우리만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까지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9.
요한 1서에서 확실하게 보여준 이분법적 사고방식이 제가 속한 나라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차별과 다른 차별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다름아닌 이 사고방식이 "우리 편" (이 편에 속한 자가 누가 되건 간에)은 돌보고 보호하지만
다른 편에 속한 이들은 우리가 만들어 놓은 범죄망에 걸리던 말건 상관하지 않는 태도로 이어집니다. 다름 아닌 바로 이 사고방식이 경제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승자가 된 우리가 성서가 말하는 "이웃"을 소외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게 합니다. 다름 아닌
이러한 이분법적 사고 방식이 본 서신에 속한 공동체와, 현 미국과, 아시아 지역에 속한 사람들을 악한 자와 선한 자로 나누게 만듭니다. 제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악은 우리가 속한 지역이 아닌 지역에만 존재한다고 가정할 때 그 힘이 최대로 발휘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10.
물론, 부시 대통령을 향해 세계를 둘로 가른 장본인-우리 (미국)를 파괴시킨 적들을 제거해야 하는 선을 향한 신성한 투쟁을 하고
있다-이라고 손가락질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런 손가락질은 분열만을 야기할 뿐입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이들이 평화를 원하며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셨을 겁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분쟁을 일으키는 요인들, 즉, 여러분들이 원하는 풍요로운 삶을 추구하고
지속하기 위해 세계화를 부채질하고 있고 우리의 풍요가 다른 이들을 굶주리는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는 그 문제의 원인을 만들고 있지 않나 생각해
봐야 겠습니다. 결국 이 분열 요인을 인정하고 지속하기 위해 다른 전략과 프로그램을 원한다면, 부시 행정부가 반복하는 그 잘못된 행위에 함께
빠져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 회의를 위해 모인 것은 다른 전략과 프로그램이 아니라,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다른 비젼을
함께 제시하고자 함입니다. 이 비젼은 진보세력의 의를 향한 자기 정당화에도 도전을 주고, 동시에 교만한 이원론에 빠져 있는 보수 세력에도 도전을
주는 그러한 비젼입니다.
11.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 편과 다른 편을 칼같이 갈라 주는 요한 1서의 말씀은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심지어 적절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듭니다. 어떠한 전쟁도 반대하는 입장에 섭시다! 부자를 유익하게 하고 가난한 자를 처벌하는 어떠한 정책도 반대하는
입장에 섭시다! 당장 눈앞에 둔 이익에만 연연해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자들로부터 환경을 보호합시다! 인종차별을 거부하는 정의를 외칩시다!
우리의 이웃에게 "예"라고 대답하고 우리와 비슷한 이해관계를 가진 이들을 향해 "아니요"라고 외칩시다! 우리가 추구하는 비젼은 우리가 아닌 다른
이들만이 강팍한 자들이며 모든 게 그들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바르게 이끌며, 우리와 다른 그들도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이들과 동등한
관계를 맺도록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12.
이 글을 마치기 전에, 요한 1서가 지닌 긍정적인 면을 언급하고 싶습니다. 엄청나게 중요한 말씀이 있는데, 바로
그것은 사랑은 호감만이 아니라 행위라는 것입니다. 본 서신에서 말하는 사랑은 의지를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그 누구도 명령에 의해 사랑에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남을 위해 그 사랑을 하겠다고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3장 말씀을 보십시오: 우리는 말로나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합시다 (3:18). 혹은 우리 딸은 이렇게 표현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말로만 떠드는 건 너무 싸다." 그렇습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나 자매의
궁핍함을 보고도, 마음 문을 닫고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안에 머물겠습니까? (3:17)
13.
그렇지만, 여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요한 1서 기자는 적극적인 사랑을 희생의 관점에서, 그 희생의 행위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랑의
실천이라고 주장합니다. 바로 앞 절인 16절을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자매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희생이 기독교의 핵심 주제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이 소외된 어떤 그룹, 여성이나 소수 민족 등에게 일방적으로 적용됨으로써, 저 같은 기득권자들에게서보다 그들의 희생을 더 많이
요구해왔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렇게 제안하고 싶습니다. 예수의 희생적인 죽음에 대한 강조에서 벗어나, 그 분의 삶, 이방인들을 환영하고,
죄인들을 용서하고, 적들을 사랑했던, 그 분의 삶을 배우고 따르면 좋겠습니다. 폭력과 죽음이 난무하는 오늘의 시대에서 상호의존적인 삶의 비젼을
지향하여 궁극적으로 그 비젼이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하게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여정으로 우리를 이끌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14.
제가 성경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오늘 성경공부를 통해 여러분들이 다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사랑은 성서의 가장 중심적인
주제-육화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 하나님의 보편적인 모든 이들을 향한 사랑-에 입각하여 오늘 함께 본 요한 1서처럼 문제가 되는
성서의 말씀들을 비판하고 도전하게 만듭니다. 동일한 선상에서 저는 미국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특별한 시기에 이 사랑은 저로 하여금 미국이 가고
있는 방향에 대해 지금까지 제가 제안한 기본적인 비젼이자 복음의 이름으로 도전하도록 만듭니다. 여기까지 제 말씀 마치고 이 사랑과 도전이
여러분들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지 여러분의 판단과 결정이 남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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