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풀어준 이유가 가관이다. 74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장에서 박정희 대통령 연설을 할 때 육영수 여사가 재일교포 문세광에게 피살당함으로 국민들과 정부가 화해가 되어 국민통합이 이루어져 정치범을 석방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은 당시 미국대통령에 의해서 한국정부의 독재와 인권탄압에 대한 압력을 받는다는 사실은 다 아는 일이었다. 또한 이런 일로 외압을 받는 우리나라가 부끄러웠다.

출소 후 첫 번째 맞는 봄 어느 날, 내가 속한 경기노회에서 제주도에 관광을 갔다. 목사님들과 사모님들 80여명이 제주도는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광주까지는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광주에서 다시 버스로 비행장에 나가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는 것이고 올 때에도 역순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대부분 노인들이고 중년층이 있었지만 내가 제일 젊었다. 무슨 짐이 그렇게 많았는지 나는 짐도 나르고 이런저런 잔일을 도왔다. 그런데 보다 못한 아내가 어른들 앞에서 신경질을 내면서 왜 여기까지 와서 일만하느냐는 바람에 무안하고 여행 내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일만 보면 앞뒤 안 가리고 내가 해야 편한 의존증이 있는지도 모른다.

신혼여행도 못한 우리 부부가 처음 가보는 제주 나들이였기에 아내에게는 신혼여행인 셈이었나보다. 나는 그것도 의식하지 못 한 채 뛰어다니다가 아내가 화를 내는 바람에 머쓱하였지만 일 할만 한 젊은이가 나밖에 없었다. 30살의 이해학 전도사.

제주여행은 날씨도 좋아 순조로웠다. 버스가 갈수 있는 중간 오름을 오르고 용두암과 천지연 폭포를 돌아 2박3일의 관광을 어떻게 보냈는지 별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제주공항에 도착하였다. 저마다 가족들에게 가져다 줄 선물을 사기에 바빴다. 대부분 귤이나 파인애플을 사서 짐이 많아졌다. 비행기를 평생 처음 타보는 분도 적지 않게 많아 올 때와 같이 가는 길도 유치원생 소풍 길같이 호기심과 조심스러움이 역력하였다. 귀향의 흥분들을 안고 우리가 타야할 비행기에 자리를 잡았고 안전벨트까지 맸다. 그때는 자동차에 안전벨트가 없어도 비행기에 안전벨트가 있어 신기하기까지 한 터이다.

그런데 웬일일까? 타고 한참을 있어도 벌써 이륙할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소식이 없다. 얼마 후에 아나운서가 들리는데 앞에 다른 비행기가 잘못 착류해서 갈 수가 없으니 내리란다. 무슨 일이냐고 웅성거리며 내렸다. 내린지 10분도 안 되어 다시 타란다. 행여 늦으면 못 탈 새라 허둥지둥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는 가겠지 하는 안도감들이 모두의 얼굴에 피어있었다. 그런데 또 기다리고 해서 기다린 후에 다시 내리란다. 못 간다는 것이다. 이거 무슨 일인가 꼭 전쟁 때 피난 가던 기분이란 분도 있었다.

대한항공사 직원이 나와서 설명을 하였다. 앞 비행기 한 대가 착륙을 잘못하여 머리를 해안 쪽으로 처박고 꼬리를 들고 있어 우리 비행기가 이륙을 할 경우 자칫 그 꼬리에 부딪혀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에 오늘은 비행기가 뜰 수가 없으니 오늘 자고 내일 오전에 태워다 주겠다고 한 후에 들어가 버렸다.

우리끼리 논쟁이 붙었다. 어떤 이는 우리가 돈이 없으니 큰 교회에 부탁을 해서 그 교회 교육관에서 자도록 하자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이 숫자를 끌고 거지같이 다니느냐 그냥 공항로비에서 자고 내일 가자  하는 논쟁들을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니 대한항공이 잘못한 것을 우리가 피해를 보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다. 그래서 “왜 우리가 이런 걱정을 해야 합니까? 이것은 대한항공이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우리 대한항공사에 해결해 달라고 건의합시다.”하고 주장하였다. 그때 제주의 큰 어른 목사이신 홍000목사가 대뜸 “야, 이해학전도사. 내가 제주도에 수 십 년을 살았고 또 비행기 연착이 다반사여도 우리는 한 번도 그따위 보상 받아 본적이 없었다. 괜히 징역 좀 다녀와서 시건방 떨지 마라. 건방지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분은 내가 긴급조치로 구속된 것이 국가시책에 반기를 든 것이라고 생각해 심기가 편치 않으신가보다. 하여간 “되든지 안 되는지는 교섭해보고 판단합시다. 제가 갈 테니 몇 분 같이 가주십시오.”하고 나섰다. 대한항공 사무실은 공항에서 떨어져 있어서 택시를 타고 가서 직원을 불러냈다. 우리가 처한 사정을 얘기하고 이 문제는 항공사 실수이기에 항공사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냐? 고 물었다.

직원의 대답은 뻔하였다. 우리는 지금까지 보상을 해본 사례가 없다. 그리고 제주에서는 날씨 관계로 비행기 연착이란 수없이 일어난다. 그것을 변상하면 어떻게 운영하겠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소리를 높였다. “이 사람 누굴 희롱하는 거야? 높은 사람 나오라고 해!”하고 소리 질렀다. 잠깐 기다리라고 들어가더니 한참 만에 나왔다. “서울 본사하고 직통전화로 상의하였는데 오늘 저녁 호텔을 잡아드리고 저녁과 내일 아침식사를 제공하랍니다.” 우리는 의기양양하게 돌아와 보고를 하였더니 모두가 좋아하면서 한마디씩 한다. 산이 막혀도 길이 있다느니. 그러니까 돌다리도 두드려 봐야한다느니.

그런데 총무목사님이 걱정스럽게 말한다. “더 큰일이 생겼어요. 오늘 광주에서 우리가 타고 갈 기차가 단체 할인혜택을 받았는데 내일 타면 오늘 표는 취소가 되기에 내일은 우리가 다시 기차표를 사야하고 할인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노회장이신 이국선 목사님 을 대동하고 다시 택시를 잡아탔다. 그리고는 그 사무실 직원에게 가서 “기차표가 무효된 것뿐 아니라 여기 다 목사님들인데 오늘 가야 내일 주보를 만들고 설교준비도 할 텐데 내일 저녁에나 가게 되면 모래 교회 일정이 차질이 생긴다. 그러니 우리에게 기차표 값을 제공해주어야겠다.”라는 제안을 하자 직원은 단호하게 “안 됩니다. 호텔과 두 끼 식사를 배려한 것도 우리 회사 역사상 최초의 일인데 거기까지는 안 됩니다. 꿈도 꾸지 마십시오.”

나는 다시 소리를 높였다. 이제 윗사람들까지 나왔다. “조중훈 사장과 통화를 하게 해주세요.” “아니 왜 사장님을 찾으세요. 이런 일은 우리가 알아서 다 합니다.” 그때는 사장이 최고로 높은 자리이다. 지사장이 우리를 자기 방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조용히 타이른다.

오늘 사고에 대한 설명과 본의 아니게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본사와 깊은 상의 끝에 통지해 드린 결론이 여러분의 요구를 마지막으로 드리는 것이다. 그러니 더 이상의 요구는 우리에게도 무리가 되는 것이고, 이런 일로 사장과 통화까지 한다는 것은 우리 직원들의 무능함으로 찍힐 우려가 있으니 죄송하지만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돌아가시라는 것이다. 잘못하면 자기들이 문책을 당한다는 것이다.

나는 막무가내로 사장면담을 요구하였다. 그는 그러면 왜 무슨 말씀을 사장님과 나누실 건지를 알아야 연결을 하지 무조건 사장과 연결 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바로 그때를 기다렸기에 말하였다. “우리가 제주도 여행을 하다 보니 커다란 목장이 조중훈 사장 것이란 설명을 들었다. 그런데 얼마 전 방송에서 우리나라 외채가 얼마인데 그중 개인별 외채 최상이 조중훈 사장이었다. 그러면 그분은 그 많은 돈을 끌어드려 항공발전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목축사업하고 땅값 올리는 투기사업을 벌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오신 목사님들이 다 목회하며 설교하시는데 조중훈 사장이 훌륭한 일을 많이 한다는 것이 좋으냐? 국가에 외채를 지우고 돈 들려와 딴 짓하는 기업인이라고 선전하면 좋겠느냐? 내가 이것을 따져 물을 거다.”라고 말하였다.

듣더니 지사장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리고는 다른 방으로 가서 상부와 심각한 논의를 한 끝에 “축하합니다. 위에서 여러분 요구를 다 들어주셨습니다.” 인사를 받고 나와서 아직도 심각한 논의에 우울한 우리 동료들께 전달하였더니 박수를 치고 만세를 부르고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우리는 항공사가 지정해준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식사 후에 비행장에 나와 줄을 섰다. 그리고 걷어 갔던 비행기티켓을 나누어 주는데 일일이 호명을 하면 받는데 대답소리가 초등학생 상장 받듯 싱그러웠다.

아, 그런데 이거 봐라 제주->광주를 빨강 색연필로 긋고 서울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것이 무슨 일인가 웅성 이는데 대한항공직원이 나와서 설명한다. “저희 대한항공에서에서 여러분들께 광주까지 가는 비행기를 서울까지 뫼셔다 드리기로 했습니다. 안녕히 가십시오.”하는 것이다.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그리고 조중훈 사장께 진심으로 고맙다고 생각하였다. 그간에 잔득 쌓인 근심들이 한꺼번에 날아가 버린 것 같았다. 어느 누구도 업무의 꼬이고 꼬인 손해를 보상하라는 말은 엄두도 못 내었다.

김포공항에 내려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한결 가볍고 내게들 와서 “역시 달라” 하거나,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이기도 하고, 참으로 따뜻한 표정으로 이해학 전도사 덕분에 편하게 왔노라 칭찬들을 하며 돌아갔다.

*그때는 재벌에 대한 인식도 척박하였고, 우리도 순진하였다. 그리고 내게 잘해주면 고마워하는 정도의 감상성에 도취되어 있었다. 그러면서 기업은 발전하고 재벌은 자랐다. 이미 우리나라는 국민 1(10)%가 사유지 57(86)% 독점하고 있고, 외채는 5,100억불(GDP의 55%) 달해있다. 그래도 70년대는 재벌이 정부와 관계에서 눈치 보는 때였다면, 지금은 재벌이 정치를 휘두르고 정부를 조종하는 때가 되었다. 이것이 우리가 재벌의 독식을 막지 못한 책임을 면치 못하고,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역사의 방향타를 주도하지 못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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