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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9월 11일(목) ‘하나님의 말씀은 때가 되면 반드시 전해진 의도대로 이루어진다!’ 1. 에스겔 12:25 (구약 1165쪽). 나는 여호와라 내가 말하리니 내가 하는 말이 다시는 더디지 아니하고 응하리라 반역하는 족속이여 내가 너희 생전에 말하고 이루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2. 갈라디아서 3:8 (신약 305쪽). 또 하나님이 이방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 정하실 것을 성경이 미리 알고 먼저 아브라함에게 복음을 전하되 모든 이방인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더디게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하루살이인 사람에게 당연한 느낌이다. 느리게 진행되는 것은 답답하다. 그러나 진노의 더딤의 혜택을 사실은 우리 자신이 누리고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 못한다. 급하게 분노하고 신속하게 벌을 내리면 생존할 사람이 없다(cf. 벧후 3:9). 하나님은 분노를 발하시는데 느리시고 오래 인내하신다. 하나님의 오랜 참으심은 침묵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언제까지니이까?’(How long?)는 탄원시를 여는 대표적인 수사적 질문이다. 들어주시는 분에게로 향하는 그러나 긴급함을 표시한다. 간절함은 사실 긴급함이다. 예수께서도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다는 그런 종말의식 속에 사셨다(마 16:28; 막 9:1; 눅 9:27). 그렇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합 2:3). 주님의 말씀은 확약이다. 믿음의 사람들에게 소망은 이미 현실이다(히 11:1).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은 자신이 받은 사명에 대한 해명에서 아브라함까지 소급해 올라간다. 바울은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이방인을 위한 선교자로 파송을 받게 된다(행 15:1-35; 갈 2:7-9). 그러나 그것은 이방인에게 다른 복음을 전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유대인들에게 성령의 부어주심과 같이 이방인에게도 성령의 능력으로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된다는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우선권을 인정받는 유대인의 복에 이방인이 참여하게 된 것이며(롬 1:16; 2:9-10) 이방인 역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7절; 롬 4장). 그것은 접붙임의 비유를 통해서 더 뚜렷해진다(롬 11:17-24). 유대남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는 그러나 믿음을 통해서 경계를 넘는다. 아브라함은 모든 이들에게 복을 전하는 통로가 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믿음에 있어서 흔들림이 없게 하시옵소서. 쉬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절망하지 않게 하시고 환난이 인내와 연단을 통해서 소망의 순전함을 드러내듯이 오히려 시련과 의혹을 딛고 우리의 소망을 더욱 뚜렷이 하고 우리의 믿음을 굳건히 하는 기회가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유대인들에게 약속되었던 구원에 동참하게 하시고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게 하셨사오니 복음을 듣고 접한 이들로서 명실공히 주님 백성으로 살게 하시옵소서. 그리고 다른 이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고 초청하여 그들도 은혜의 혜택을 누리게 하는 이들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462장 (생명 진리 은혜 되신);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447장 (이 세상 끝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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