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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3일(목)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신다!’ 1. 이사야 49:15 (구약 1028쪽).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2. 요한일서 4:8 (신약 392쪽).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어머니와 자식 사이는 불가분리다. 생명체의 밭과 같은 자신의 태에서 태어나 자기 젖을 먹여 키운 아들딸은 잊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긍휼 때문이다. 긍휼은 어머니의 태와 같은 즉 거기서 파생된 단어다. 그것은 잊혀지지 않음으로 특징지어진다. 잊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 자식은 생각과 마음을 지배하는 대상이다. 약한 자식에 대한 마음은 더욱 그러하다. 불가능한 ‘혹시’를 통해서 하나님의 긍휼을 더욱 강조해 말하고 있다(13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이 서술문은 놀라울 지경이다. 하나님이 사랑이다?! 그렇다면 주어와 술어의 관계를 뒤바꾸어도 동일한 것인가? 사랑이 하나님인 것인가? 문장에 대한 오해에서 나오는 질문이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사랑이시다!’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번역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사랑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그것을 경험하지 못한 그래서 하나님 사랑에 무지한 사람이기 때문이다(cf. 마 6:12.14-15).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 대한 긍휼의 마음을 놓치지 않으시며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혹시 우리가 주님을 잊는 경우는 있을지 몰라도 어머니가 자기 자식을 불쌍히 여기듯 주님께서는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보살펴주십니다. 또 우리의 손에 힘이 빠져 놓치는 수가 있을지라도 주님께서는 우리를 꼭 붙들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이 사랑을 경험하며 이를 감사 가운데 감지하고 사랑으로 응답하며 살아갑니다. 주님의 사랑과 용서와 은총을 배반하는 어리석은 이가 되지 않게 하시고 받은 큰 사랑에 작게라도 보답하며 사랑 받은 주님의 자녀로서 어울리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71장 (나와 같은 죄인 위해); 499장 (흑암에 사는 백성들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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