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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0월 26일(주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차별이 없게 하소서!’ 1. 잠언 3:27 (구약 914쪽).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2. 야고보서 2:2-4 (신약 372쪽).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 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사람이 가진 능력은 자기를 보위하고 홀로 행복을 누리기 위한 권리가 아니다. 잠언의 구절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도리어 베풀어야 할 의무로 지워진 과제임을 명확하게 한다. 자신이 소유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사회가 베푼 혜택이다. 자신의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자신이 소유한 그 재산증식의 능력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고(신 8:18) 사회는 그것이 결실하게 한 토대였다. 공동체는 자신을 키운 요람이며 북돋움의 자양분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얻은 것을 되돌리고 받은 은혜를 되갚아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받은 은혜(Gabe)는 베풀어야 하는 의미에서 내려놓고 풀어놓아야 하는 아름다운 즉 그 위에 얹어진 짐(Aufgabe)이다. 부유함과 가난함이 상존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다(잠 22:2). 서로 형제로 인식해야 한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것이다(cf. 마 23:8-9). 차별이 천부적으로 정당화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가난한 자에 대한 태도가 곧 그를 지으신 이에 대한 태도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잠 14:31; 17:5). 사는 동안 소외가 없을 수 없다. 현실의 모습이다. 그러나 실족하게 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마 18:7; 눅 17:1). 말하려는 바는 분명하다. 세상에 소외가 존속하는 한 약자의 보호와 주변에 머무르는 이들에 대한 선행의 책무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태만이 죄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소외가 많을수록 과제는 오히려 더 커진다. 복의 기회가 늘어나는 것이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잠 19:17).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 안에 차별이 없게 하시고 서로 도우며 살게 하시옵소서.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지으신 이들로서 주님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심을 인식하고 우리가 서로 형제자매들로 대하게 하시옵소서. 선을 행하되 적극적으로 하게 하시고 형제를 사랑하되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하는 모든 것이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고 판단되는 것임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517장 (가난한 자 돌봐주며); 467장 (높으신 주께서 낮아지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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