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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11월 30일(주일) ‘이제는 주님을 속에서부터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1. 예레미야 31:34 (구약 1102쪽).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 마태복음 21:15-16 (신약 34쪽).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하시는 이상한 일과 또 성전에서 소리 질러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어린이들을 보고 노하여 예수께 말하되 그들이 하는 말을 듣느냐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렇다 어린 아기와 젖먹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찬미를 온전하게 하셨나이다 함을 너희가 읽어 본 일이 없느냐 하시고... 무엇을 말하는가? 이제는 자명한 것이 되었다. 굳이 가르치고 배우라 하지 않아도 말이다. 하나님께서 누구이신지 모두가 알게 된 새 현실이다. 그들은 마음 속에 하나님의 율법을 새겨 가진 이들이고(cf. 사 51:7) 그래서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이심전심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가 된 관계다(33절). 앎은 그런 관계의 매개자다(cf. 창 4:1). 양은 목자의 음성을 알고 목자는 양을 안다(요 15:4-5.27). 마음을 살피고 폐부를 감찰하시는 분에 대한 지식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편만하게 된다. 하나님 찬양은 어린 아이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진짜다. 이론과 학식으로 하나님을 배워서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머리에서 나오는 것이지 가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지식과 삶이 다르다. 안다고 하는 인지상태와 실제로 사는 것이 부조화되고 생활이 앎과 격리된 이의 말은 진정한 찬송일 수 없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말이다. 어린아이들의 노래가 될 만큼 사람들의 입에서 떠날 수 없었던 바람과 염원이 표현되고 있다. 우리의 고백과 찬송이 그런 것이기를...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분화되고 이론화되고 정리된 지식 이전에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살고 있는 주님의 백성인 것을 느낌을 포함해 우리의 모든 것을 통해 단번에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찌 배워서 알겠습니까? 척 하면 알 수 있는 그것으로 인해 우리는 주님께 마음 다해 감사를 드리며 주님께 노래하며 힘차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는 앎을 얻은 이들로서 우리 삶 전체를 바쳐 주님의 뜻을 이루며 기뻐하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142장 (시온에 오시는 주); 141장 (호산나 호산나); 562장 (예루살렘 아이들); 139장 (오 영원한 내 주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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