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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24일(화) ‘하나님은 약자의 변호자이시며 그들의 권익을 지켜주시는 정의의 수호자이시다!’ 1. 시편 140:12[히13절] (구약 905쪽). 내가 알거니와 여호와는 고난 당하는 자를 변호해 주시며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푸시리이다. 2. 야고보서 2:15-16 (신약 372쪽).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하나님은 사람의 고난에 눈감고 계시지 않는다. 시인에게 고난은 악인에 의해 의인이 당하는 부당함인 경우다. 악인들은 폭력적이고 간교한 이들이다. 늘 못된 짓만 꾸미고 모함하고 어떻게 하면 괴롭히고 무너뜨릴까를 강구하는 이들이다(2.5절. cf. 시 38:12; 64:5 etc). 그들의 일상이다. 하나님이 그러나 지켜보고 계신다. 그는 악인의 계획이 성공하도록 그대로 놔두지 않으신다. 악은 아무런 조치 없이 방치되지 않는다. 의의 수호자 하나님은 무고한 이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분이시고 약자의 권익을 지켜주시는 이시다. 말만 하면 뭐하나? 가장 얄미운 사람은 좋은 말만 주워 삼키며 실제로는 하지 않는 이들이다. 그것이 외식(外飾)이다. 바리새인들이 그랬듯이 그들은 손가락 하나 까닥이지 않으며 입으로만 사는 이들이었다(마 23:3-4. cf. 5:17-20). 야고보에게 행함과 분리되어 따로 있는 덕목으로서 믿음은 없다. 바울에게 있어서처럼 선행하는 믿음에 분리될 수 없이 따라오는 후속행위가 있는 것이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예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죽은 것이다(17.26절). 그게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14.16절. cf. 욥 15:3).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불의가 창궐하고 우리가 부당함을 경험한다 해도 주님께서 모든 것을 바로잡으실 것을 믿으며 우리는 좌절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뜻에 따라 의로운 삶을 살기를 멈추지 않으며 끝내 공의로우신 주님의 보호와 도우심 속에 승리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유혹에 빠져 또는 시련에 굴복하여 불의에 동조하지 않게 하시고 의롭고 선하게 살게 하시되 불법을 단호히 배격하고 거짓을 물리치게 하시어 우리의 믿음이 우리의 행위와 삶 속에서 실제로 증거 되게 하시옵소서.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대로 언행일치의 삶을 살게 하시고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외식자가 되지 않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517장 (가난한 자 돌봐주며); 467장 (높으신 주께서 낮아지심은); 516장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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