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 1일(주일)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게 하소서!’ 1. 여호수아 23:11 (구약 356쪽). 그러므로 스스로 조심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2. 요한일서 5:3 (신약 392쪽).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신명기 역사가의 관점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과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그것이 역사서술의 즉 의롭고 불의함의 그리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가르는 기준이다. 성서의 사관이다. 계명의 준수는 다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히브리어 '쉐마'로 시작되는 그래서 '쉐마'로 불리는 신명기 6:4-5은 바로 그 문장이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cf. 막 12:30). 자신의 지정의(知情意)를 모두 동원한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계명의 준수는 사랑함의 표시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그를 사랑하는 길이다. 사랑의 실제 증거가 된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어떤 오해의 여지없이 이를 명확하게 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21]; 15:10. cf. 요이 1:6). 그것은 원칙이며 방법이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새 계명으로 다시 강조되지만 처음부터 있었던 것 즉 근원적인 것이다(요일 2:7-8; 요이 1:5-6).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성격의 계명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는 계명이 가진 특징을 분명히 하셨다(마 22:36-40). 첫째 하나님 사랑과 둘째 이웃 사랑이 별개가 아님을 밝히고 명확히 하신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이웃[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것이며 그러므로 이웃 사랑 없는 하나님 사랑은 거짓이라는 것을 말해준다(요일 4:20). 율법[계명]의 정신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며(마 23:23) 누가에 의하면 그것은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눅 11:42)이다. 사랑은 사랑이다. 구별하지 않으며 편을 나누지 않는다. 온전한 사랑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되 우리의 생각과 이성, 지식과 의지를 다하게 하시옵소서. 힘에 부치기까지 주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하시옵소서.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고 계명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라는 이 말씀을 잊지 않게 하시옵소서. 거짓 없는 사랑을 하게 하시고 그리하여 우리의 믿음이 표리부동한 것이 되지 않게 하시고 우리의 신앙생활이 언행일치한 것이 되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468장 (큰 사랑의 새 계명을);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462장 (생명 진리 은혜 되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