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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6월 11일(목)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의지하고 주님만 우리의 소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이주형 (pfrrhee)
2026년 06월 11일 06시 36분 58초 45

2026년 6월 11일(목) ‘주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을 의지하고 주님만 우리의 소망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1. 여호수아 1:9 (구약 320쪽).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2. 고린도후서 1:9-10 (신약 286쪽).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여호수아는 전무후무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인 모세(신 34:10)의 후계자로 지명된 이다. 그는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존재요 역사적인 인물인 모세의 시종[보좌관]이었던 이다(1:1; 출 33:11). 모세가 죽은 후 그가 이스라엘의 새로운 목자가 된 것이다(민 27:17). 그는 대체 불가한 위대한 지도자 모세의 뒤를 이어 제대로 남은 과제를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요단 동편 모압 땅에 도착한 이들을 요단강을 건네 가나안을 차지하게 이끌 수 있을 것인가? 이 군사 지도자는 가나안 정복의 임무를 완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다. 어디서든 함께 하시겠다는 동행의 약속이다. 보호와 인도라고 할 수 있다. 강하고 담대하고 두려워 말라는 것은 바로 그 하나님의 명령이다. 명령 앞에 겁은 허락되지 않는다.

'위로의 편지'라 할 수 있는 고린도후서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희망을 만들어내시는 분에 대한 찬송시로 시작된다(3절). 극단의 환란과 극도로 심한 정도의 고난은 살 소망까지 버릴 정도의 극한적 절망이었다. 그것이 비로소 참 신앙의 시작임을 말한다. 사람이 가진 마지막 가능성까지 무의미한 것이 되는 맨 밑바닥에 내려가서야 비로소 하나님만이 희망이 되심을 알게 된다. 사람으로부터 어떤 도움도 받는 것이 불가능하고 일말의 희망도 없을 때 진정한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것처럼... 죽어야 살고 죽어도 산다는 바울의 신앙[신학]이 담겨 있다. 진정한 좌절을 맛본 이는 하나님 안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을 넘어서는 희망의 줄을 잡은 이요 소망의 닻을 달고 항해하게 되는 것이다. 절망할 수 없는 것이 오히려 절망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함께 하시겠다 약속하십니다. 넘을 수 없을 만큼 너무나 큰 산과 같고 질 수 없을 정도로 무거운 짐과 같은 과제 앞에, 도저히 이룰 수 없을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질 때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겠다는 그 약속을 부여잡습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주님께서는 하실 수 있고 주님께서 우리의 능력이 되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조금의 소망이 없을 때에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음은 주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고 진정한 희망의 근원이 되어주심을 알기 때문입니다. 좌절한 이를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 주님이시며 새 힘을 부어주시는 분이 주님이십니다. 우리가 넘어지는 거기서 비로소 우리는 우리를 일으켜 세워주시는 주님을 만나고 우리의 절망 너머에서 참 소망의 빛을 비춰주시는 주님을 뵙게 됩니다. 주님께서 언제 어디서나 우리와 함께 해 주신다는 믿음을 선물해 주신 주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아멘.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464장 (믿음의 새 빛을); 344장 (믿음으로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