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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23일(목) ‘내가 주님을 부르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1. 시편 88:8-9[히9-10절] (구약 867쪽).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2. 사도행전 3:2 (신약 190쪽).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시인의 기도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진술한다. 그는 아마도 중한 질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단절된 상태로 있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고립된 것이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에게 호의적이지 않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하신 것으로 이해된다(cf. 애 5:15). 그분의 분노가 있었고 그의 파도가 괴롭힌 것이다. 물론 적대자들이 의롭다는 말은 아니다. 어쨌든 스올, 무덤, 웅덩이, 음침 등은 그의 실질적 심리적 상태를 알려주고 있다. 눈이 쇠했다는 것은 기력을 잃었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시인은 매일 기도한다. 그 기도는 회개다. 성전으로 가는 길목에 구걸하는 이가 있다. 기도하러 가는 이들은 적어도 더 연민의 마음을 가진 이들일 것이다. 적선(積善)은 그들의 미덕(美德)이다. 기도자의 심리를 이용해 살아갈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나면서부터 걷지를 못하는 이였다. 달리 생계수단이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데려다 놓으면 그는 거기서 구걸을 한다. 베드로와 요한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근본적인 해결을 얻었다. 예수는 요구 이상이다. 그는 걷고 뛰고 찬송하며 성전으로 올라간다. 성전은 하나님 찬양의 집이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상황을 살피시고 우리를 고립으로부터 구해주십니다. 주변은 호의적이지 않으며 우리는 외롭고 우울할 때도 많습니다. 우리는 주님께 기도하며 해결과 개선을 호소합니다. 우리의 허물과 잘못을 용서하시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어 열악한 조건이 바뀌게 하시고 기쁨과 행복이 우리 삶에 되돌아오게 하시옵소서. 우리로 하여금 공동체 안에서 주님을 마음껏 노래하며 값지고 신나게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363장 (내가 깊은 곳에서);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369장 (죄짐 맡은 우리 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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