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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9월 19일(토) ‘하나님은 우리와 끝까지 다투시고 벌하시려는 분이 아니시다!’ 1. 이사야 57:16 (구약 1037쪽). 내가 영원히 다투지 아니하며 내가 끊임없이 노하지 아니할 것은 내가 지은 그의 영과 혼이 내 앞에서 피곤할까 함이라. 2. 요한일서 2:1 (신약 388쪽).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이 견뎌낼 수 없다. 그의 시간은 하루살이 인간이 셈할 수 없는 장구한 것이다. 그의 크기는 사람이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화를 내신다면 먼지나 티끌에 불과한 인간은 태풍이나 회오리바람에 의해 날아가 버리는 것과 같을 것이다(cf. 시 90:1-11). 인간은 뜨거운 동풍이 불면 시들어 버릴 꽃과 같은 약한 존재다. 견뎌낼 수 없어 힘을 잃고 삶의 의욕을 상실할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한 눈을 감아주시고 없었던 것으로 해 주시고 덮어주시지 않으시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cf. 시 103:8-18). 사는 것이란 결국 봐주시는 하나님의 용서 체험의 기회이며 그의 은총을 경험하는 과정인 것이다. 우리는 범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주님 안에 있는 이는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은 범죄 하지 않는다?(요일 3:6.9; 5:18). 정말인가? 그런데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요일 1:10)는 또 무엇인가? 대언자는 보혜사[위로자]와 같은 단어다(요 14:16.26; 15:26; 16:7). 뒷배로서 우리를 의롭게 살도록 도와주시기도 하는 이시다. 징계도 하시고 시련을 주시어 훈련도 시키시지만 또한 감당할 수 없을 때 그 시험을 피할 길도 주신다(고전 10:13). 한편으로는 진정 겸허하게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꺾이지 않는 당당함으로 살아가게 하신다. 그러므로 쉬 죄를 짓지 못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주님은 연약한 우리를 붙들어 일으켜 세워주시고 실패를 딛고 다시 시작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징계하시기도 하시지만 그러나 우리를 가르치시고 힘을 북돋우시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시련을 당할 때 우리는 도리어 주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므로 버리지 않으셨음을 깨닫게 되고 우리를 견책하시므로 우리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주셨음을 알고 오히려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스스로 헤쳐 나갈 수 없을 때 우리에게 길을 알려 주시고 우리가 지쳐서 절망하고 포기할 때 우리 곁에서 우리를 붙잡아 일으키시고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어 이기고 나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 안에서 늘 겸손하게 그리고 어디에서나 두려움과 위축됨 없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 아멘. 찬송가 342장 (너 시험을 당해);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382장 (너 근심 걱정 말아라);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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