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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10월 17일(토) ‘우리가 서로 약한 이들의 짐을 져 주어 하늘 뜻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이주형 (pfrrhee)
2026년 10월 17일 06시 40분 07초 3

2026년 10월 17일(토) ‘우리가 서로 약한 이들의 짐을 져 주어 하늘 뜻을 이루어가게 하소서!’

 

1. 예레미야 22:3 (구약 1084쪽).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 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2. 갈라디아서 6:2 (신약 308쪽).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공동체가 견고하게 되고 건실하게 존재하게 되는 것은 정의와 공의가 실행됨으로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것이 왕의 직무다(2절).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시 99:4). 정의가 적극적으로 시행되지 않는 것은 곧 불의가 판을 치고 있다는 반증이다. 망하는 필패의 지름길은 정의의 부재다(cf. 합 1:2-4). ‘왕은 정의로 나라를 견고하게 한다!’(잠 29:4). 정의가 강처럼 흘러야 한다(암 5:24). 그것은 무엇보다도 사회적 약자를 그들을 압박하는 자로부터 구해내고 보호하는 것에서 이루어진다. 후기예언서를 시작하는 이사야 서두는 – 이어지는 모든 예언서가 이 기조 아래 있다 – 이 부분을 집는다(사 1:2-20).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압제하지 말며 서로 해하려고 마음에 도모하지 말라!’(슥 7:10).

서로 짐을 짊어지는 것은 사랑의 행위다. 그렇게 사랑함으로써 즉 짐을 져줌으로 그리스도의 법이 성취된다. 이 법은 사랑의 법이다. 야고보서의 어휘를 사용하자면 ‘자유하게 하는 율법’(약 1:25; 2:12)이다. 로흐만은 십계명 해설서의 제목을 ‘자유의 길 안내’(Wegweisung der Freiheit)라고 붙였다. 그것은 부제가 말해주듯 십계명의 관점으로 본 성서윤리에 대한 개괄적 전개(Abriß der Ethik in der Perspektive des Dekalogs)였다. 예수께서는 [십]계명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압축하셨다(마 22:36-40. cf. 눅 11:42). 많은 기타 규정들은 그 두 가지에 주렁주렁 달린 잔가지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 말라!’는 금지계명 속에 담긴 ‘하라!’는 요구를 읽어내신 것이다(cf. 마 7:12). 그것이 져야 하는 짐이며 갚을 수 없는 빚이다. 하나님은 친히 짐을 져주시는 분이시다(시 68:19. cf. 55:22).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로운 길을 결연히 선택하고 걸어가게 하시옵소서. 조그만 이익에 눈이 어두워지고 욕망에 붙들려 잇속만 차리려 하다가 함께 공멸하는 일이 없게 하시옵소서. 약한 자에 대한 연민의 마음을 주시고 자비가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하시어 우리를 통해서 세상을 지으신 이이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옵소서. 홀로 지기에 곤비한 짐들을 서로 들어주며 염려와 슬픔을 나눔으로 주님의 법이 성취되게 하시고 그리하여 이 세상이 주님의 나라가 될 때까지 그렇게 이 땅에서 주님의 자녀들이 형제자매로서 서로 도와가며 사이좋게 화목하며 살게 하시옵소서. 우리의 짐을 맡아 주시고 근심을 담당해주시는 주님처럼 우리도 질식할 만큼 무거운 짐 아래 허덕이는 이들의 짐을 줄여주고 같이 행복하게 하시옵소서. 아멘.

 

찬송가 218장 (네 맘과 정성을 다하여서); 517장 (가난한 자 돌봐주며); 462장 (생명 진리 은혜 되신)